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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드라마 ‘조강지처클럽’ 김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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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바람난 남편들이여, 아내의 복수를 조심하라.” 탤런트 김혜선의 강력한 경고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변해도 너무 변했다. ‘왕꽃선녀님’의 참한 무속인 부용화나 ‘소문난 칠공주’에서 평범한 주부 이미지로 나왔던 덕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줌마표 뽀글 파마에 앞머리는 싹싹 빗어 핀으로 꽂아 넘기고, 몸뻬 차림에다 손수건을 목에 질끈 묶어 촌티 패션을 완성했다.

목소리가 크고 무식한 데다 바람 난 남편을 두드려 팰 정도로 억센 여자다. 탤런트 김혜선(38)은 SBS 주말드라마 ‘조강지처클럽’에서 의사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시장바닥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생선을 파는 ‘한복수’로 180도 변신했다. 그렇게 변신할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20일 SBS 일산제작센터에서 김혜선을 만났다.

“연기 경력 20년에 완전히 제 모습을 벗은 건 처음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처음엔 괜히 했나 후회도 많이 했는데, 이제 좀 적응되네요.”
 
그는 문영남 작가가 그에게 복수 역을 권했을 때 덥석 받아들였다. 이때 아니면 언제 하겠나 싶어서다.

“여배우라면 욕심 낼 만하죠. 이런 질펀한 역할을 해보지 않고선 한국적 어머니상을 연기할 수 없어요. 여자 연기자는 결국 엄마·할머니가 돼야 하잖아요.”
 
김혜선은 “연기자는 나이 들수록 예뻐 보이려 하지 않을 때 더 예뻐 보이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전엔 몇 시간씩 걸리던 분장이 요즘에는 단 5분에 끝난다. 맨 얼굴에 분첩을 몇 번 찍어 바르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남편 이기적(오대규)에게 “넌 발가벗고 덤벼도 아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거야”란 말을 듣는, 여성이기를 포기한 캐릭터다.

“가락시장에서 생선 자르는 법부터 배웠어요. 진짜 생선 파는 아줌마들은 귀걸이 걸고, 매니큐어도 발라요. 하지만 제가 매니큐어 바른 손으로 칼질하면 비현실적이라며 야단 날 걸요.”
 
드라마라 오히려 전형적 이미지를 그려내야 했다는 얘기다. 현실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아이러니다. 푹 퍼진 복수의 모습이 ‘여자가 꾸미지 않으면 남자가 바람난다’는 편견을 강화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엔 이렇게 답했다.

“이기적이란 남자 성격대로라면 마누라가 집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어도 분명히 바람을 피웠을 거예요. 그런 남자가 어디 한둘이겠어요?”
 
이기적은 이름처럼 이기적이다. 불륜 사실이 알려지면 교수 임용에서 누락될까 봐 내연녀 정나미(변정민)마저 뿌리치는 남자다. 복수는 자기 이름에 걸맞게 복수극을 벌인다. 남편을 윽박질러 재산 포기각서를 받아내고, 정나미에겐 화끈한 발차기를 날린다.

“이 드라마는 스턴트맨도 안 쓴다니까요. 액션 신을 찍느라 안 쓰던 근육을 써 담이 결렸어요. 하도 소리를 질러대 목의 혈관이 터져 피를 토한 적도 있어요.”
 
그렇다고 화끈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남편이 바람난 걸 안 뒤 화신(오현경)과 얼싸안고 우는, 상처받은 여자이기도 하다. 그땐 연기가 아니라 진짜 슬퍼서 울었단다. 복수와 화신에게서 아픔·슬픔 등 그들의 인생이 묻어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지금 뜨끔해하며 보시는 분들, 빨리 정신 차리고 가정으로 돌아가세요. 불륜 드라마가 아니라 ‘바람을 피우면 풍비박산 나니 그러지 말자’는 의도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그의 화통한 목소리가 연기자 대기실 밖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원래 조신하고 참하다는 김혜선은 어딜 갔는지 인터뷰 내내 복수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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