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시간을 발견한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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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지질학자 제임스 허턴(1726~97)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것이다. 그는 '근대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한 획기적 업적을 쌓았다. 성경에 근거해 지구 나이를 6천년으로 추정하던 당시의 신학적 가설을 뒤집으며, 지형은 침식.퇴적의 일상적 현상으로 바뀌고 지구는 6천년보다 훨씬 오래됐다고 주장한 최초의 학자다. 그에게 과거를 푸는 열쇠란 켜켜이 쌓여 있는 지층이었다.

그러나 허턴의 눈부신 성과는 후세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역사 저술가인 저자 렙체크는 허턴의 업적이 빛을 발하지 못한 까닭을 시대 상황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1783년),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연거푸 일어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기에 지질학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이 널리 회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형편없는 글 쓰기도 한몫했다. 웬만한 인내심 갖고는 그의 글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운 없는' 지질학자 허턴은 창세 신화와 '킹제임스 영역성서'를 토대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는 가설에 감히 도전장을 냈다. 신학자들은 노아의 홍수 같은 지구를 뒤덮는 대격변이 지질을 변화시켰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허턴은 대지가 침식되고, 토양이 해저에 쌓이고, 입자들이 차곡차곡 단단하게 굳어 퇴적암이 생성되는 것은 파도.폭풍우 같은 일상 작용과 지진처럼 가끔 일어나는 변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바로'동일과정설'이라는 학설이다.

그러나 당대에 평가받지 못했던 그의 연구는 다음 세대 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초판 5백부에 불과했던 그의 저서 '지구의 이론'은 지질학의 명저로 꼽히는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낳았고, 찰스 다윈은 바로 그 책을 보고 진화론을 발전시켰다. 지질학의 패러다임을 종교에서 과학으로 바꾼 대격변의 중심에 허턴이 서 있었던 것이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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