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63.사진) 시인은 서울대 미학과 시절에 동료 조동일, 후배 채희완씨 등과 함께 누구보다 앞서 깬 의식으로 한민족의 원형으로서 탈춤을 연구하고 실연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러 김 시인이 책을 한 권 썼다. 탈춤 속에 깃든 민족미학을 꿰뚫는 강의록이다. 1999년 부산에서 민족미학연구소를 연 채희완 소장의 청으로 열었던 여섯 차례의 공개 강의를 정리한 책은 다소 어려우면서도 한국과 동아시아 미래의 열쇠를 담금질하려는 노시인의 뜨거운 마음을 느끼게 한다. 2002년 여름, 길거리에서 '태극과 궁궁'을 외치고 춤추던 7백만의 '붉은 악마'와 '촛불'에서 시인은 후천개벽의 조짐을 보았다며 이렇게 말한다. "풍수나 기론(氣論)과 미학이 합일하는 새로운 해석학으로서의 '생명학'이 드디어 나타날 때가 된 것이다."
김 시인은 탈춤이 '환(環)', 즉 고리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판을 이뤄 집단적 신명이 순환하면서 확대되는 고리, 또 그 둥근 시간 속에서 과거와 미래가 바로 현재 속에 생동하는 살아 있음이 탈춤의 생성원리 '환'이라는 것이다. 그 순환은 반복되고 확장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그림자를 들추어내는 수단이 되는데 탈춤이 관객이나 동네 사람을 집단적으로 치유하는 굿, '살판'이 되는 까닭이다. '춤의 판-시간, 탈춤의 마당-공간, 탈.몸.춤-육체, 눈-시각, 불-조명, 신-진화의 여섯 개 장으로 탈춤의 민족미학을 설명한 시인은 자문자답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 없다. 그러나 그 언저리까지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정재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