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탈루 혐의 없을 땐 ‘급습’ 세무조사 안 하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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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올 7월 국내 대기업의 사무실에 국세청 직원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국세청 직원은 이 회사의 재무 관련 장부를 싹쓸이하다시피 해 가져갔다.

이 회사에 대한 심층 세무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회사 측은 당시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했다. 업계의 궁금증은 커져갔지만,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의 특성상 목적이나 배경에 대해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같은 형태의 세무조사가 대폭 줄어든다. 국세청이 탈세 제보나 정보 같은 구체적인 세금 탈루 혐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정 업체에 대한 개별 분석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25일 국세청에 따르면 세무조사 대상 선정의 자의성 논란을 줄이기 위해 업종별, 탈루 유형별 분석 형태로 세무조사 대상 수시 선정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그동안 국세청은 탈세 제보, 탈세 정보 자료와 같은 구체적인 탈루 혐의가 있는 경우뿐 아니라 특정 업체를 선정해 개별 분석한 뒤 탈루 혐의가 드러나면 세무조사에 들어가는 사례도 많았다.

 국세청은 또 2003년부터 외부에 노출하지 않았던 조사요원의 명단을 내년부터 공개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납세자의 청탁 가능성을 미리 막아보자는 취지로 운영됐으나 실익도 없을뿐더러 세무조사가 음성적이고 불투명하다는 오해만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기업을 조사할 때는 ‘조사 공무원 풀’ 제도를 도입해 조사 기업에 적합한 전문요원을 차출, 사안마다 조사반을 별도로 구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납세자가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조사 담당자를 개별 접촉해 고충을 해결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납세자의 애로사항을 공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여성 조사요원을 대폭 늘려 조사반 내 내부견제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현재 지방청 조사반의 여직원 수가 평균 0.57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이를 한 명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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