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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 뛰어넘는 지역 발전을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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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바야흐로 정치가 넘치는 계절은 일단락됐다. 이제부터는 가능성이 아니고 현실이다. 그간 너무나도 많은 원치 않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판단을 뒤흔들었고, 각종 공약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는 뒷전이었다.

특히 지역 발전에 관한 이야기는 구체화될 수 없었다. 너무 큰 공약들은 검증하기도 힘들고 짧은 시간 안에 실현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더욱더 지역의 눈이 크게 떠져야 한다.

지난 몇 년간 각 지역은 지역균등 발전이라는 유혹적인 이름으로 홍역을 치렀다. 실제로 발전의 발화점을 찾기 힘든 지역에,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균등하게 기회를 줄 것 같은 이 매혹적인 단어에 공을 들인 지자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하기도 전에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더욱 지역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지자체는 더욱 서두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강원도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인 공약과 함께 다소 추상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약속을 했다. 강원도를 ‘미래의 땅’이라는 서사 속에 가두지 않고 현실에서 발전시켜 잘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정체돼 발전에 배고파 있는 지역으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속도와 방향은 발전의 양대 축이지만 타이밍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속도를 내야 할 때 주춤하면 동력을 잃을 수도 있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면 쓸데없는 힘의 낭비가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그래서 당선자의 발언이 더욱 귀한 때다. 지역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뛸 때와 숨 고를 때를 구분하고 우리 모두 조금만 여유 있게 갔으면 한다.

다행히 요즈음 지역에는 그간의 정치색을 띠고 정부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와는 출발부터 다른,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고 스스로 참여하는 시민운동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그들은 대선 공약이건 지자체의 장이나 의원 선거건 간에 더 이상 무분별한 공약이나 개발 편향에 지역이 훼손되고 왜곡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질타하며, 행정도 이제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아직도 업적으로 평가받는 물리적 개발은 전시행정의 표본이지만 어떤 경우는 미래를 내다보는 제안과 실천도 있다. 이를 올바르게 구별하려면 충분한 검증을 거쳐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듯하지만 행정과 전문가, 시민 사이의 의사소통이 좀 더 밀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 행정은 모든 실천의 중심에 있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나친 사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문가는 대부분 따로 있으며 진짜 주인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역을 아끼는 주민과 전문가들이 의연히 나서야 할 때다. 진정한 지역 사랑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되돌아볼 때인 것이다.

박경립 강원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