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집요한 일본의 안보 태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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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이 노동미사일을 적시해 강조한 것은 중국 측의 예민한 반응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실험의 본질적 목적은 미·일의 미사일 방어체제 공조를 국제사회에 과시한 데 있다. 미 국방부 방어국장과 일본 해상자위대 장군이 동시에 공중 요격실험을 발표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덧붙여 미국은 일본 이지스함의 성공적 요격을 ‘중요한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일본 이지스함의 미사일 요격이 성공한 이후 우리 사회 일부에선 미사일 방어체계를 일본 수준으로 강화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체적 방법으로 두 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일본 이지스함의 요격미사일 수준으로 독자적 미사일 방어체계를 갖추자는 주장이다. 둘째는 일본과 미국이 발전시키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에 적극 동참하자는 주장이다. 모두 우리의 국방태세를 강화하자는 주장으로 근본적으로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국가전략적 여건을 고려해 보다 지혜로운 전략적 대응을 찾아야 한다. 일본과 북한 간의 지정학적 이격 거리와 남북 간의 군사전술적 종심은 다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일본은 동해에 북한 탄도미사일을 격추할 다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기지에서 우리 국토를 표적으로 발사한 미사일을 격추시킬 바다도, 시간도 남북 사이에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 일본이 가지고 있는 해상 요격미사일 방어체계를 갖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저고도로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를 우선적으로 갖추려는 정책은 옳다.

지금 우리는 일본의 요격미사일 발사 능력을 부러워하기보다 일본과 미국의 군사협력이 함축하는 전략적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아태 전략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라는 전략 벨트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독립국가연합(CIS)으로 이어지는 전략벨트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벨트의 새로운 대결구도에서 ‘충돌적 사안’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인 것이다.

중국-러시아-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체계를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다. 주변국들은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한반도 안보 정책에 반영하려 할 것이다. 우리의 전략적 고민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국형 미사일 체제’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되, 유사시 우방의 미사일 방어체계 작동을 담보할 수 있는 ‘협력적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번 1회의 미사일 요격훈련을 준비하는 데 5500만 달러(500억원)를 사용했다. 북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안보를 위협한다고 일본은 호들갑 떨고 있지만 일본을 탄도미사일로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국가는 없다. 그럼에도 일본 지도자들은 국가 수준에 걸맞은 첨단 군사력을 갖추기 위한 집념을 갖고 있다. F-22 구매 노력이 그렇고, SM3 발사 실험이 그렇다.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중시하고 국가 위신을 보장할 첨단 군사력 보유에 집착하는 일본 지도자의 마인드를 눈여겨봐야 한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