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버스 탄 승객 행복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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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도봉산에서 무교동까지 오가는 버스는 방울과 트리 장식으로 성탄 분위기를 전한다. 산타 복장을 한 100번 시내버스 기사 박찬균(41)씨가 버스를 타는 손님에게 환하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이수기 기자]

  “다음 정류장은 길음 뉴타운입니다. 산타 출발합니다.”

 서울 도봉산에서 무교동을 오가는 100번 버스 기사 박찬균(41)씨는 2005년부터 매해 겨울마다 빨간 옷을 입은 산타할아버지로 변신한다.

 그가 모는 버스도 다른 버스와 다르다. 버스 안에는 번쩍번쩍하는 성탄 조명과 갖가지 커다란 방울들이 달려 있다. 앞 유리 가운데에는 수염이 달린 산타할아버지 얼굴 장식이 붙어 있다. 버스 안에는 캐럴도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버스 외벽은 눈송이 모양의 장식들로 덮여 있다.

 버스가 정류장을 출발할 때마다 박씨는 헤드셋 마이크를 이용해 “산타 출발합니다. 다음 정류장은 ○○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한다.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에게는 일일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성탄 장식 시내버스=성탄 장식을 한 시내버스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겨울 기분을 물씬 느낄 수 있고, 산타 옷을 입은 기사들의 친절한 태도에 시민들은 만족스러워 한다.

 처음 산타 버스가 등장한 것은 2005년 겨울. 서울시 시내버스 업체 중 하나인 한국 BRT주식회사 우세환 사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버스 한 대에 15만원쯤 드는 장식 비용도 전부 회사에서 부담했다.

 100번 외에 360·140·471번 등 5개 노선 188대의 버스를 운영하는 이 회사는 올해도 21대의 버스에 성탄 장식을 하고 손님을 맞고 있다.

 버스 기사 박씨는 19일 “산타 버스를 탄 시민들이 즐거웠다며 박수를 쳐줄 때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맙다고 빵을 주는 분도 있다”고 웃음 지었다.

 손님 중 일부는 아기를 데리고 일부러 성탄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을 수필가라고 소개한 40대 손님이 “수고한다”며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친절한 산타 기사=성탄 버스 기사가 되는 조건도 까다로운 편이다. 회사는 올해 희망자 중 성실성과 근무성적을 감안해 42명의 기사를 뽑아 성탄 버스에 배치했다. 회사 측은 “산타 옷을 입고 있는 기사가 시민들을 불친절하게 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성탄 장식은 기사들이 더 친절해지는 효과도 낳았다. 손님들이 먼저 “멋있다”, “잘 어울린다”라고 인사말을 하니 기사들은 더 친절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성탄 버스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버스 안이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 안에 걸려 있는 종이나 인형 같은 성탄 장식을 떼어 가는 승객도 많았다.

 박씨는 그러나 “호응해 주는 시민이 점점 늘고 있어 이제는 명물이 됐다”고 웃었다. 그는 “처음에는 우스꽝스럽다고 비아냥대던 동료 기사들도 이제는 되레 옷이 제법 잘 어울린다고 격려한다”고 말했다.

 버스 운전 경력 17년차인 그는 “내년에는 제 버스를 타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수기 기자 , 사진=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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