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함께 보는 판결] 개인채무 면책제도 필요한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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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16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600억 달러 이상으로 증가하고,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그러나 개인채무는 75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전의 기업 채무가 개인에게 이전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개인채무는 경제변동을 수반하는 자본주의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근무하던 직장의 수익성이 악화돼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경기가 침체기로 돌아서면 한계수익에 의존하던 개인은 채무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인지적·의지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개인채무가 발생하기도 한다. 질병·사고 등을 예상하고 자신의 수입과 소비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입에 따라 마땅히 소비를 조절하여야 하지만 쇼핑·술·도박 등 제어하기 힘든 유혹으로 채무가 증가하기도 한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개인채무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보다 자본주의의 경제환경과 인간으로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려면 개인들이 끊임없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개인채무에 대한 무한책임을 ‘면책’이라는 제도를 통해 탕감해 주어야 채무에 대한 두려움 없이 경쟁에 참여하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 트럼프, 하인츠 등 파산절차를 통해 자신의 채무를 탕감받은 뒤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개인채무를 탕감하는 방법은 채무자에게 소득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채무자에게 소득이 있는 경우 채무자는 개인회생 절차와 개인 워크아웃 제도를 이용할 수 있고, 소득이 없는 경우에는 파산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우리나라의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은 개인채무자로 하여금 급여소득이나 영업이익에서 법원이 인정하는 생계비를 공제한 가용소득으로 채무의 일부를 변제하고 나머지 채무를 탕감받는 개인회생 제도를 두고 있다. 개인회생 절차를 이용하면 법원이 인정하는 생계비(1인 생계비 약 65만원, 2인 생계비 약 110만원, 3인 생계비 약 145만원, 4인 생계비 약 180만원)를 넘는 소득을 5년간 변제에 제공하고 나머지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다. 개인회생 절차는 법원의 금지명령을 통해 채권자로부터의 추심을 막을 수 있고, 채무탕감을 받는 데 채권자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회생 절차는 무담보 채무가 5억원 이하일 경우에 이용할 수 있고, 5억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법인과 마찬가지로 일반회생 절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 경우 변제 기간이 최장 10년으로 연장되고, 담보 채권자의 4분의 3, 무담보 채권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복잡한 정식 회생 절차를 밟아야 한다.

파산 절차의 경우 면책 불허가 사유가 개인회생 절차보다 엄격하므로 도박, 지나친 낭비의 경우와 같이 면책 불허가 사유가 있는 경우 소득을 창출하여 개인회생 절차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파산 절차에서 면책 불허가 사유가 있다 할지라도 법원이 재량으로 면책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채무의 일부에 대하여만 면책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대법원은 면책 불허가 사유가 있는 경우라도 파산에 이르게 된 경위,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면책을 허가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또 그와 같은 재량 면책을 함에 있어서는 불허가 사유의 경중이나 채무자의 경제적 여건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채무액의 일부만을 면책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경제적 갱생을 도모하려는 것이 개인파산 제도의 근본 목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채무자가 일정한 수입을 계속적으로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 잔존 채무로 인해 다시 파탄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점이 소명된 경우에 한해 그런 일부 면책이 허용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6. 9. 22. 자 2006마600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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