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최우수기사 조훈현 제자 이창호에 連敗 악몽딛고천하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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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벼랑끝에서 다시 일어서는 자만이 진정한 강자다.16일 94기도(棋道)문화상에서 올해의 최우수기사(MVP)로 선정된 조훈현(曺薰鉉)9단.그는 연초에 제자 이창호(李昌鎬)에게 철저히 무너져 바닥까지 침몰했었으나 연말엔 다시 일어서 최 우수기사의 영광을 안았다.
연초에 조훈현.이창호가 대격돌했다.각종 기전의 결승에서 두사람이 맞붙어 무려 27번기를 치렀다.이 싸움에서 曺9단은 연전연패,모든 영토(타이틀)를 내줬고 지방기전인 대왕(大王)하나만남게 됐다.비참했다.
80년대에 국내 전기전을 두번이나 휩쓸었고 89년엔 세계최대의 잉창치(應昌期)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해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던 曺9단은 허수아비대왕으로 전락했다.
조훈현은 여기서부터 다시 일어섰다.2월의 진로배 세계대회(국가대항전)에서 한국킬러 요다(依田紀基)9단이 파죽의 5연승으로밀고들어올 때 曺9단은 이 기세를 꺾고 한국팀에 우승을 안겨줬다. 5월엔 동양증권배 세계대회 결승에서 요다9단을 3대1로 꺾고 우승했고 9월엔 후지쓰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해 세계4대기전을 모두 석권하는 세계최초의 기사가 됐다.국내에서는 제자의 쿠데타로 쫓겨난 황제가 바다를 건너가 세계를 휩쓸어버렸 다.
16일의 기자단투표에서도 누가 최우수기사냐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12월10일 기준으로 曺9단 66승27패,李7단 66승19패.최다승에선 동점이지만 승률은 李7단이 1위.李7단은 국내 10관왕이고 曺9단은 세계의 패자.
상금획득은 11월까지 曺9단이 4억9백40만원으로 단연 1위(李7단은 2억1천만원,劉昌赫6단은 1억8천만원).결국 투표가벌어져 조훈현 9표,이창호 7표,유창혁 1표,기권 1표가 됐다. 두사람의 싸움에선 李7단이 이겼으나 투표에선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 최고상금을 벌어들인 조훈현의 「강렬한 승부사적인상」이 이겼다.
42세의 나이에 曺9단은 현재 93국을 두었고 연말까지는 1백국을 훨씬 넘어설 전망이다.살인적이라는 1백국을 소화하면서도그는 다시 거의 전기전에서 결승에 진출했다.도전자 조훈현과 이창호의 22번기는 이미 다시 시작됐다.지난번엔 완패했지만 이번엔 어떻게 될까.
이창호 등장이후 대부분 손을 끊었지만 앉아서 하는 모든 종목의 게임에서 曺9단은 지는 일이 없었다.특히 마작은 16세 때부터 프로였다.승부를 좋아해 마주(馬主)가 돼 가끔 경마장에도간다.서봉수(徐奉洙)9단의 표현을 빌리면 『기술 도 최고지만 프로근성도 세계최고』다.그러나 이창호는 여전히 국내최강.미묘하고도 섬뜩한 사제간의 제2차 격돌에 연말 바둑계가 뜨겁다.
〈朴治文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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