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10대 폭력 누구 탓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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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날로 심각해지는 청소년 범죄는 걱정과 우려를 넘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초등학생이 하급생 3명을 40도가 넘는 보일러실에 8시간 동안 감금하는가 하면, 중학생들이 급우를 집단으로 괴롭히며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시키는 일도 있었다. 한참 맑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청소년들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가.

청소년 범죄의 1차적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아이들은 사회적 진공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들 식으로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미래에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현실이 어려워도 이겨내는 힘이 있으며 현실의 여러 가지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 학연.지연.혈연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이러한 연줄이 없는 사람들은 희망을 갖기 힘들다. 지연과 혈연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청소년 시절에 망국적인 학연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 그래서 소위 일류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희박한 아이들, 심지어는 4년제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없는 아이들을 우리 어른들은 미리 싹수가 노란 아이로 낙인찍는다. 학벌에서 소외된 아이들…, 이들이 이 땅에서 설 자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들이 뛰어놀 놀이터엔 몰지각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해환경이 대신하고 있다. 조폭이 미화되며 여성을 성 노리개로 희화한 영화가 명작으로 간주되는 사회, 정신대 할머니를 이용한 포르노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회,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곧 접할 수 있는 각종 음란 사이트, 청소년보호법이 있으나마나 쉽게 살 수 있는 술과 담배, 이들에게 주어진 놀이 공간이다.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날 청소년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 수 있을까.

유해환경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청소년들에게 비친 어른들의 모습이다. 더 고급, 더 비싼 유흥업소에서 각종 향락을 즐기는 어른들이 성공한 어른들인 것이다. 하룻밤 술값이 수백만원인 유흥업소에서 온갖 추잡한 향락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학연.지연.혈연을 발판으로 성공한 어른들이며, 이러한 향락을 출세한 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계속 발생하는 학교폭력을 비롯한 청소년 폭력의 주된 원인은 학자금이 아닌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왜 아이들은 폭력적인 수단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가. 이 역시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폭력이란 자기의 권력, 즉 힘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는 수단이다. 가시적인 폭력,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비가시적인 폭력, 제도적인 폭력이다. 우리 사회는 제도적인 폭력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총잡이들이 하루아침에 권력을 탈취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폭력을 자행했으며,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돈과 권력의 이중주인 정경유착은 이 땅의 제도적 폭력의 근원이며 모든 폭력을 배태했다.

더 무서운 현실은 이런 천인공노할 폭력이 합리화되거나 유야무야된다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조금 망신당하면 된다. 권력의 핵심에서, 그리고 그 주변에서 온갖 폭력을 자행했던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결국 살아남아 또 같은 짓을 반복했다.

공부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놀 장소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해환경뿐이며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다. 어른들의 폭력, 제도적인 폭력엔 이렇게 관대한 사회가 아이들의 폭력엔 왜 이렇게 민감한가. 더 정직하게 말해 우리는 진정 가슴으로 우리의 청소년들 걱정이나 하고 있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어른들이 먼저 정신 차리지 않고 아이들만 탓해선 안 된다. 어른들의 제도적 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한 아이들의 폭력 역시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 아이들을 걱정한다면 먼저 우리의 모습에서 그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준호 고려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