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고교 평준화가 부른 교육 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고교 평준화 정책이 1977년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교육정책과 대입 방식이 15번 이상 바뀌었다. 학교 성적이 미미하게나마 대입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79년 대입부터였다. 그 후 대입에서 내신 비중은 계속 증가했지만 학교교육의 질은 그에 반비례해 하락했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은 계속 늘고 있다.

입시정책이 당초 의도와 달리 교육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한 점을 개선하려면 먼저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고교 평준화 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이 제도를 고수하기 위해 교육당국이 내놓은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등 갖가지 대책은 문제를 점점 꼬이게만 만들고, 결과적으로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다.

학생 능력에 맞는 수준별 학습을 실시해 대부분 학생이 희망과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고, 그를 바탕으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직업을 통한 행복 추구의 기본 방향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현장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지역과 학교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교육여건이나 학생들의 학력 격차를 감안하지 않은 채, 아니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내신 성적을 강조하다 보니 한때는 고교에서 점수 부풀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명백하게 존재하는 학교와 학생 간 교육 성취도 차이를 인정하는 문제로 해묵은 논쟁을 계속해 온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리 교육당국은 수차례의 교육과정 개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중등학교 교육 내용을 간섭하고 규제해 왔다.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됐지만 이는 중등교육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 수준별 수업은 유명무실하게 운영돼 왔다. 사회·과학과목에서의 무분별한 선택과목 증가로 인해 다수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만 개설돼 오히려 학생의 교과 학습권과 선택권이 박탈됐다. 물리 과목의 경우 화학·생물에 비해 선택하는 학생이 적다는 이유로 대부분 고교에서 개설하지 않고 있다. 이공계의 기반인 물리가 단지 입시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등한시된다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공계 인력 공급이나 과학기술 발전을 꾀할 수 있을지 참으로 막막하다.

중등교육 현장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수월성이나 경쟁원리를 무시한 채 무조건적 평등과 평준화 이념에 사로잡혀 근시안적인 대책만을 거듭한다면 선진국 진입은커녕 주저앉고 말 것이다.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가 한두 가지 대안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그래도 해법을 찾으려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거쳐 대책을 찾고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지난 30년간 우리 사회에서 수정 논의조차 금기시돼 온 고교 평준화 제도, 3불정책에 대해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 지금처럼 교육인적자원부가 행정 지원 차원을 넘어 교과과정 편성과 입시제도 등 모든 교육 분야를 좌지우지하고 예산을 이용한 규제와 당근으로 근시안적 정책을 고집한다면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는 물론 우리 자녀가 일하고 살 풍요의 기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박영아 명지대 교수·한국물리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