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짱 아줌마 “비만도 차 버렸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고양시 여성 축구팀(흰색 유니폼)이 부천시 여성 축구단의 선수가 찬 공을 막기 위해 점프하는 모습. [인천일보 제공]

지난 2일 경기도 안산시 풍경운동장에서 열린 ‘제3회 상록수 최용신기 생활체육 전국여성축구대회’ 준결승전에서 고양시 여성 축구단 감독겸 선수인 이명화씨<右>가 부천 여성 축구단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인천일보 제공]

 “이쪽으로 길게 패스해야지!”

 “태클이 너무 약해. 그 정도로 볼을 뺏을 수 있겠어!”

 14일 오전 10시30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열병합발전소 인조잔디 구장. 추운 겨울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수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이게 웬걸. 자세히 보니 30대부터 50대까지로 구성된 주부 20명이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뛰고 있었다. 고양시 여성 축구단이다. 이들은 운동장의 절반만 이용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미니 축구경기를 벌였다.

 “언니, 빨리 공격으로 올라와.” “중앙 수비수를 커버해야지.”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휴식도 없이 전·후반 합해 30분간 연습경기를 했다. 경기장 주위에서는 아줌마 선수들의 연습을 응원하러 온 남편들이 “잘한다”는 함성을 질렀다.

 전국 최강 고양시 여성 축구단의 훈련장은 이렇게 열기가 넘친다. 이 팀은 이달 2일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최용신기 생활체육 전국 여성축구대회에서 대구시 팀을 꺾고 우승했다. 창단 6년 만에 전국 최강 여성클럽으로 도약해, 올 들어서만 전국 대회를 두 차례나 제패했다.

 ◆축구가 좋아서 뜁니다=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붐이 전국적으로 일기 시작하던 2001년 11월. 고양시는 여성 축구단 모집 공고를 냈다. 여성 축구를 생활체육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일산 신도시와 고양시에 사는 여성 30명이 처음 모였다. 20대 후반부터 50대 중반까지의 주부들이었다. 모임 당시 회원 대부분은 축구공을 차 본 적이 없는 완전 초보자였다.

 이들은 일산 신도시 백석동에 있는 축구 연습장에서 ‘취미 삼아’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선수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주부들은 뛰는 것도 힘들어했고, 공을 차도 15m 이상 날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5년간 취미로 뛰다 보니 허전했다. 뭔가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14년간 여자 축구 국가대표로 활약한 이명화(34)씨를 지난해 12월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진짜 축구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10시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드리블에서부터 킥·패스까지 기본부터 다시 배웠다. 숨이 헉헉 차고, 부상도 자주 당했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기를 봐 줄 사람이 없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나오는 회원도 여럿 있었다. 고양시는 이들을 위해 대회 출전비와 축구화·축구공을 지원했다. 이 결과 올 들어 고양시 여성 축구단은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4월에는 여성부장관배 전국여성축구대회 3위를, 6월엔 송파구청장기 준우승을 차지했다. 7월엔 경기도지사배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10월엔 문화부장관배 전국여성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여세를 몰아 2일 열린 최용신기 여성축구대회도 제패했다.

 ◆건강과 다이어트에도 최고=회원 김복순(31)씨는 결혼 후 딸을 낳은 뒤 체중이 69㎏으로 급격히 불었고, 무릎과 허리가 아파 5년간 고생했다. 그는 2년 전인 2005년 11월 고양시 여성축구단에 가입해 축구를 즐긴 결과 지금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김씨는 “지금은 체중이 13㎏이나 빠졌고, 무릎과 허리 통증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봉선(44) 회원은 “6년간 공을 차면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과격한 운동이라고 반대하던 남편도 이제는 조기축구 회원이 돼 부부가 같이 축구를 즐긴다”고 자랑했다.

전익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