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개고기 먹는 스위스 '아펜첼' 마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렸던 다보스에서 자동차로 서북쪽으로 두시간 넘게 차를 달리자 해발 1천6백m가 넘는 험준한 크론베르크 산이 가로막는다. 함박눈이 시야를 막을 정도로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웅장한 산으로 뻗은 도로에 접어들었다. 낭떠러지를 끼고 아슬아슬하게 난 길에서 자동차 타이어는 가끔 헛돌며 비틀거렸다. 눈 아래로 구름이 시야에 들어왔다. 차를 돌리기엔 너무 높이 올라왔다고 느낀 순간 앞이 탁 트이며 고원이 펼쳐졌다.

여기서 스위스 동부 산간지방의 중심지역인 인너로덴이 시작된다. 읍소재지만한 이곳의 인구는 1만5천여명. 1991년 연방법원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할 만큼 외지고 그만큼 보수적인 곳이다. 아직도 전체 주민이 마을 광장에 모여 직접투표로 주요 의사결정을 한다. 그래도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수려한 경치와 소몰이 의식 등 다채롭고 독특한 풍속 덕분에 해마다 20여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 마을은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개고기를 즐겨 먹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인너로덴 중심에 있는 아펜첼 마을. 중세풍 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좁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모퉁이에 자리잡은 향토박물관을 찾았다. 책임자인 구이도 부옵은 예상했다는 듯 껄끄러운 질문에 차분히 응했다. 그는 "극소수 농가에서 개고기를 먹지만 과장되게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주민은 "아직도 많이들 먹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않을 뿐"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광우병 파동 후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했다.

스위스의 정육관리 규정 제73조는 개.고양이 고기와 그 가공육을 판매하거나 유통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러나 집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 것은 허용된다. 지난달 중순 유럽동물자연보호협회(ETN)는 스위스 정부에 "개와 고양이 식용풍습을 금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노레르트 귄스터 회장은 "아펜첼 지방에서는 누구 집에 가면 개고기를 먹을 수 있는지 안다"며 "기호에 따라 개고기는 2주간 소금에 절여 갖은 양념을 한 뒤 보관했다가 벽난로에 훈연해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애호가들은 간.허파.혀까지 먹는다"고 덧붙였다.

차를 몰아 좀더 깊숙이 들어갔다. 퇴박당하길 몇차례, 농가를 나서던 70대 노인을 만났다. 그는 "가끔 집에서 개를 먹지. 새끼가 불어나 키울 데가 마땅치 않으면 남에게 주지 않고 잡아먹는 경우가 많아"라고 했다. 그는 "경험상 두세살 된 개의 고기맛이 제일 좋다"고 했다. 주로 고기를 다져 스튜를 해먹거나 스테이크로 구워 먹는단다. 개고기뿐 아니라 개껍질의 피하지방도 먹는다.

노인은 "다 자란 로트바일러(목축과 경찰 활동에 쓰이는 개) 한 마리를 잡으면 고기가 20㎏ 정도 나온다"면서 "연하고 맛이 담백해 쇠고기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외부인들의 비판에 대해 "개고기 먹는 것을 비난한다면 소나 다른 동물 고기는 왜 먹느냐"고 반문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14년 졸로투른주에 있는 게어랑핑어 제련소의 노동자가 '개와 고양이고기 식용 금지 움직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낸 적이 있었다. 당시 말고기와 더불어 값이 가장 쌌던 개고기는 체력 소모가 큰 제련소 노동자들이 즐겨 먹었다. 특히 개껍질의 피하지방은 제련소 노동자들의 고질병인 진폐증과 신경통에 잘 듣는다며 인기를 끌었다.

한 현지 주민은 "10여년 전 독일의 상업방송인 RTL이 아펜첼의 개식용 습관을 보도한 뒤 항의 서한이 쇄도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고 했다. 당시 아펜첼 당국은 7천여명이 서명한 개고기 식용금지 청원서를 접수했지만 연방정부에 전달하는 것을 거절했다. 개인의 식습관을 연방정부가 관여할 일이 못된다는 이유에서다.

아펜첼=유권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