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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들은 ‘뉴하트’ 비웃어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호 15면

일러스트 강일구

종합병원에 ‘아는 의사’ 하나 없이 가는 일은, 당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외로워질 각오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플 때처럼 센티멘털해지고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지고 절박할 때도 없을 텐데 한없는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들은 무표정하고, 내 이야기를 두 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고, 몸 안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린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종합병원에 갈 때마다 나는 의사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난 정말로 당신과 진지하게 대화하고 싶어요. 선생님이 나를 ‘케어’해주는 사람이란 걸 느끼고 싶단 말이에요.”

TV에 의학드라마만 나오면 시청자 눈길이 기본은 가고, 리얼리티 논란이 일어도 시청률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건 그렇게 절실하게 병원과 의사와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일 터. 의사는 변호사·판사보다, 경찰보다, 로비스트보다도 훨씬 보통사람들의 삶에 밀착한 전문직이다. 누구나 가까이 접하며 살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하기 힘든 전문성의 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린 그 세계가 궁금하다.
그래서 ‘ER’과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고 난 뒤에도 ‘닥터 하우스’에 빠져들고,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이 죽일 놈의 의사라 하더라도 한편으로 그를 동정하며 ‘외과의사 봉달희’를 응원하는 거다.

MBC ‘뉴하트’ 첫 회는 드라마로선 그다지 참신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어두운 과거를 대물림한 주인공 최강국(조재현)이나, 원칙주의자 인턴 남혜석(김민정) 대 순혈주의자 인턴 이은성(지성)의 캐릭터 대비 등 큰 구도도 그렇지만 장면 하나하나를 뜯어보니 대사나 상황설정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것이 많았다.

의대생을 자처한 한 네티즌은 “말도 안 되는 과장과 웃기는 인턴 캐릭터. 의대생들끼리 보고 엄청 웃었다”며 “보통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엄청난 별세계로 그려진 드라마의 엉터리 리얼리티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런 냉정한 시선으로 이 드라마를 보기엔 난 그저 힘없는 보통환자일 뿐이다. 혹시라도 오지 외딴 병원에서 내 폐 속에 피가 가득 차 있을 때 전설 속의 명의를 만나서 볼펜대를 꺾어 꽂더라도 목숨을 구하는 행운이 내게 있길 바란다. “이 환자가 고통을 안 받았으면 좋겠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많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러니 이 드라마, 현실 속의 병원과 의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슬퍼지는 보통환자가 꿈꾸는 판타지를 실현해주는 것만으로도 매력이 있어 보인다. 그걸 드라마 속의 판타지로나 여겨야 하는 의사와의 ‘소통 불가’의 현실이 좀 서글프긴 하지만 말이다.
의사 선생님들, 바쁘시겠지만 드라마도 챙겨 보시면서 그 속의 주인공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의사 이미지를 바라고 있는지 느껴 보셨으면 한다.

그리고 의대생 네티즌님, 우리가 보기엔 의사는 엄청난 별세계에 사는 사람 맞다. 그러니 드라마에 말도 안 된다는 냉소를 날리기보단 고통받는 환자를 어여삐 여기는 주인공 의사를 보면서 단 몇 초라도 자신을 되돌아보시길 기원한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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