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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에겐 칼, 나에게는 날 선 연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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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강남구 포이동의 옥탑방 화실에서 만화가 이현세(51)씨와 마주 앉았다. 1m80㎝가 넘는 큰 몸집, 청바지에 헐렁한 니트 차림이었다. 그는 12일부터 홍익대 앞 KT&G 상상마당에서 『천국의 신화』초창기 원화(原畵)와 표지 20여 점을 모아 첫 개인전 ‘잃어버린 신화’를 열고 있다.

인터뷰 초반부터 눈을 자꾸 내리깔았다. 송년회로 몸이 고단했던 거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유난히 술자리가 많다”고 한다. 그럴 만하다. 7월 골프만화『버디3』 서문에 슬쩍 고졸 학력 고백을 했던 게 우연히 신정아씨 사건과 맞물려 일파만파가 됐다. 그는 “말이 없는 책에다 쓰면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다”고 말했다.

만화 인생 28년에 1800여 권의 만화책을 만들어 냈다. 그가 다작(多作)을 한 건 8할이 술이다. 할머니는 사고로 갓 아버지를 잃은 여덟 살배기에게 ‘제주(祭酒)’를 들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엔 시장에서 막걸리를 사오다 한 통을 다 비울 수준이 됐다.
“얼마 전 『신의 물방울』작가인 아기 다다시도 만났지만 전 소주 순애보예요. 와인은 맛이 여러 가지라 사람이 거기 적응해야 하잖아요. 근데 소주는 딱 한 맛이에요. 내 기분에 한결같이 소주가 맞춰주죠.”

술심으로 지탱해온 만화 인생

취향 비평 한번 남자답다. ‘이현세’하면 빠지지 않는 특징이 남성 우월주의와 힘의 미학, 애국주의다. 그는 왜 스포츠 만화, 그리고 역사에 탐닉했을까. 가족사의 영향이 크다. 그는 항일전쟁을 하다 만주에서 총살당한 할아버지, 포항을 거쳐 경주로 피란 왔던 생활력 강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스무 살까지 자신이 큰아버지의 막내아들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성년이 되던 해, 원래는 장남인 그가 대를 잇기 위해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년간 방황을 했다. 이런 인생역정은 작품 『오계절』에 반영됐다.
“그때 이후 내겐 다중인격까지는 아니지만, 양면성이 있어요. 장남이기도 하고 막내아들 같기도 한…. 두 누나 밑에서 할머니가 어떤 짓을 해도 오냐오냐 키우셨으니 내 ‘마초 기질’은 거기서 온 게 아닐까요?”

올해는 힘든 만큼 좋은 일도 많았다. 작품 『 버디』로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탔고 3년간 평생 유일하게 양복 입고 다녔던 한국만화가협회장 일도 탈 없이 끝난다.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못하던 그가 ‘지원 좀…’하고 굽실거리는 일은 영 몸에 맞지 않았다. 자유인인 그가 회장 감투를 쓴 건 ‘임꺽정’으로 유명한 이두호 작가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이현세는 40대에 100권 분량의 대하 서사만화에 도전했으나 좌절했다. 외설 시비로 6년간 법적 공방이 일었던 『천국의 신화』얘기다. 4년간 매달 열린 재판을 이두호 작가는 한번도 빠짐없이 방청했다. 술을 좋아하는 그가 아침에 재판에 출석하지 못할까 봐 몇 번 전화를 걸어 깨우곤 했다.

당시 만화가협회장이었던 이 작가는 “이 사건은 작가의 창작과 관련된 상징적 일”이라며 그를 독려했다. 이때 일이 계기가 돼 이현세는 이 작가를 인생의 멘토로 모시고 있다. 이 작가가 협회장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고민하자 이현세는 선뜻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현세가 주춤한 사이 라이벌 허영만 작가의 ‘타짜’ ‘식객’ 등이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얻었다. 질투가 날 만하다.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요. 저는 술자리에 앉으면 작업할 때처럼 엉덩이가 무겁죠. 다음날 영향을 받아도 끝까지 달려요. 근데 허 작가는 달라요. 절제력이 강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죠. 저의 빈틈을 친 게 아니라 허 작가의 스타일이 맞는 시대가 온 거죠. 그리고 제 작품은 스케일이 너무 커 작품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허허.”

한번 앉으면 종기 날 때까지 그려

실제 그렇다. 1982년 작품 ‘국경의 갈가마귀’가 내년에야 SBS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천국의 신화』는 작품을 계약한 지 몇 년째지만 개봉 소식이 감감하다. 하지만 10년 동안 자부심으로 남은 건 그가 일으킨 창세신화 상상력 붐이다. “요즘 드라마 ‘주몽’ ‘태왕사신기’를 보면서 고증이 잘못됐네, 머리 모양이 이상하네 욕하지 않잖아요. 다만 그 상상력과 무협을 즐기죠. 이렇게 된 지 오래 안 됐어요.” 그의 눈에 힘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담덕(광개토대왕)에 대한 고증은 좀 더 책임감 있게 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일침을 놓았다.

프로라면 당연히 있는 징크스, 그에게도 있을까. 답은 의외로 소탈했다. 연필만을 고집한다는 것. 연필꽂이에 두 다스도 넘는 뾰족한 연필을 꽂아놔야 직성이 풀린다. ‘감(感)’이 오는 찰나에 연필이 무뎌지면 김이 확 샌다. 그냥 연필도 아니다. 몸체를 가리도록 창호지를 둘둘 말아서, 항상 같은 두께와 촉감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만의 명품이라고 할까요. 일본 사무라이들 매일 칼 갈잖아요. 연필 깎을 때 그런 비장한 기분 들어서 좋아요. 요즘 학생들 거의 다 샤프연필로 그림 그려요. 근데 그런 펜으론 미세한 묘사를 해내기 힘들거든요. 주인공들이 연기가 안 돼요.” 까치와 엄지 같은 국민의 연인은 그런 까다로운 집중력이 낳은 인물이다.

그 날 선 연필로 대체 하루에 몇 컷이나 그려내는 걸까. “그런 게 없어요. 외인구단 마지막 권은 신들린 듯 하루 만에 다 써 내려간 걸요. 난 엉덩이에 종기가 생길 때까지 앉아 있어요. 반면 인터뷰가 있거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날이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요.”

펜 촉감ㆍ두께에 누구보다 예민

화실에 눌러앉아 그림을 그리고 난 뒤 집에서는 백수처럼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누워서 책 읽기를 즐긴다. 그는 옥탑에 대한 애착이 있다. 어릴 때 만화책을 읽던 삼각형의 공간이 주는 묘한 안정감을 사랑한다. 소문대로 엄청난 독서광이다. 다큐멘터리(비소설)를 좋아해 시공사에서 나온 예술총서 시리즈를 탐독했다. 소설은 직접화술을 쓴 중국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나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를 추천한다. 학생들에게는 스타일이 강한 김훈의 글을 보고 스토리를 연구하라고 충고한다.

“영화에서는 배우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연기가 큰 몫을 하지만 그림에선 그게 불가능해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내야 할 텐데 그 연기는 글에서 나옵니다.”

나이 50줄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얘기가 끝이 없다. “딸 시집 보내는 얘기 등 아이들에게 동화를 잔잔하게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그동안 항상 젊은 사람들의 인생, 그들의 도전ㆍ시련ㆍ고뇌를 다뤘잖아요. 만화라는 장르 독자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작가로서 마지막에는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화 속 캐릭터가 아닌 둘째 딸 엄지(25)의 실제 얘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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