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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37.강당 연주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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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50~60년대 세계적 음악가들이 연주했던 이화여대 대강당.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다. [사진=이화여대 제공]

정확하고 공격적인 연주로 이름난 거장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1903~91)이 피아니시모(가장 작게)로 연주할 때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피아노를 작게 칠 때마다 밖에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60년대에는 아무리 세계적인 연주자가 내한해도 강당 외에는 공연할 곳이 없었다.

고급스러운 음향은 물론 기대할 수 없었고 기차 소리나 안 들리면 다행이었다. 거의 모든 연주가 열리는 장소는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이었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피아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첼로), 루치아노 파바로티(성악)도 모두 이곳에서 내한 연주회를 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이 내한했을 때다. 서울 시내 어디를 가도 전력 공급이 불안정했던 때다. 아니나 다를까 연주회장의 전기가 갑자기 끊어져버렸다. 연주 중에 갑자기 정전이 된 것이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음악이 끊어지겠구나.’ 하지만 그들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았다. 그냥 깨끗하게 진행되던 음악을 그대로 연주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연주하고 있던 음악이 월터 피스톤이라는 현대 음악 작곡가의 곡이었다는 것이다.

현대 음악은 음표 나열이 복잡하고 화성도 익숙한 것이 아니어서 악보를 봐도 연주하기 힘들다. 게다가 독주도 아니고 4개의 악기가 호흡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세계 최고 연주자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국악을 하는 내가 서양의 음악가들을 찾아다닌 이유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내 성격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성향이 맞는 음악가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음악회를 찾아다녔다. 그중 가장 기억이 남는 사람이 바바라 스미스다. 미국 이스트만 음대의 피아노 교수를 역임한 그는 당시 하와이대학교의 민족음악학 교수였는데, 한국에서 한동안 머물며 국악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는 특히 태평양 지역 음악의 연구 분야에서 대단한 권위자이다. 제르킨의 독주회에 같이 간 것도 스미스였다. 독주회 당일, 그의 한국 거처인 명동 YWCA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찾아갔을 때 난처한 일이 발생했다. 숙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굉장히 좁았는데 그 길에 하필이면 분뇨차(세칭 똥차)가 서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인 나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냄새가 고약했다. 나는 이 미국 여성이 얼마나 놀랐을까 하고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스미스는 예의 그 온화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평온하게 웃으며 우리는 음악회로 향했다.

내가 외국 음악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 만 배운 것이 아니다. 그들의 품격 또한 나에게 큰 인상이 돼 남아있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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