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은행,南門 다시튼다-"대문 잘못놔 장사안된다"복원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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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사라진 대문(大門)을 다시 찾자.』 잘 사용해 오다 어느날갑자기 시멘트를 발라 벽으로 만들어 없애버린 상업은행 본점의 정문(正門)이 사라진지 13년만인 오는 23일 예전의 그 때 그 자리에 복원(?)된다.
단순히 문 하나 다시 내는 것 같지만 상업은행으로서는 이 정문의 복원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대문이 잘못 나 있는 집이 장사가 잘 되겠는가.그러니 대문을 없앤 뒤부터 금융사고등 뜻하지 않은 수난에 휘말리지 않는가』라는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에 심각하게 귀를 기울여지난 달부터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기 때 문이다.
상업은행 본점에는 원래 일제(日帝)때부터 동서남북으로 4개의문이 있었다.
그중 사람 통행이 가장 많은 남쪽문을 정문으로 삼아 왔으나 지난 81년 돌연 남쪽 정문을 없애 벽으로 막아 버렸다.
잘 있던 정문을 막은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최근에 공사를 시작하며 당시의 「정문 폐쇄 품의서」를 찾아 보았더니 이유를 적게 되어 있는 곳은 공란이었다고 한다.
다만 박정희(朴正熙)대통령 당시 대통령 차량이 자주 지나는 주요 길목에 나 있는 문이라 하여 닫게 했다는 「청와대 지시설」이 유력한 설로 전해 내려올 뿐이다.
정확한 이유야 어찌됐든 그 때부터 남산 3호 터널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문(東門.정확하게는 동남향)이 대신 본점 정문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82년의 이철희.장영자 사건부터 시작하여 올해의 한양(漢陽)부실로 인한 고생에 이르기까지 계속 일이 벌어지자 자못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본점 터부터가 3호 터널로 기가 빠진 뒤로는 이만저만 세진 게 아닌데『정문이 왜 하필 이쪽으로 나있느냐』는 것이 지관들의 한결같은 지적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은행측도 가만 따져보니 실제로 그랬다.남쪽 정문을 막고 다른쪽 문을 정문으로 사용한 이후 정말로 은행에 수난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지태(鄭之兌)행장부터가 아예 3호 터널 쪽으로 향해 놓여 있던 집무용 책상을 북쪽 시청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한양문제는 해결됐다.
한양 일이 풀리자 은행측은 30년된 건물 보수 공사를 하면서차제에 옛 건물설계도를 뒤져 사라진 남쪽 정문 자리에 다시 정문을 만들기로 하고 지난달부터 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상업은행은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남쪽 정문을 공식적으로 다시열면서 「새출발 잔치」도 문 앞에서 벌일 예정이다.
〈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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