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뉴스] 미국은 또 금리 내렸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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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은행 직원들이 붙여준 이성태(사진) 한은 총재의 별명은 ‘자기부상열차’입니다. 결정이 빠르고, 한번 결정하면 좀처럼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 총재의 스타일을 흔들림이 적은 자기부상열차에 비유한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이 총재에게선 좀체 그런 모습을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 총재가 의장인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매달 한 차례씩 정책금리 수준을 결정한 뒤 ‘통화정책방향’을 발표합니다. 여기엔 앞으로 금리를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를 시사하는 문장이 들어가지요. 그런데 10월 이후 석 달째 발표문에서 이 같은 문장이 실종됐습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이 총재가 그만큼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 고민이 깊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런 이 총재에게 12일엔 고민거리가 더 안겨졌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1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4.5%에서 0.25%포인트 낮췄습니다. 석 달 연속 금리를 내린 것이지요. 그동안 한은은 금리를 계속 동결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정책금리가 미국보다 0.75%포인트나 높아졌습니다.

양국 간 금리 차가 벌어지면 교과서적으론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게 됩니다. 한국에 투자하면 이자를 더 많이 주니 달러화 자금이 밀려들고, 달러화가 많아지다 보면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수출로 먹고삽니다. 환율이 떨어지면(원화 가치 상승) 수출엔 치명적입니다. 올 들어 계속된 환율 하락으로 수출 기업들이 아우성쳤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이 총재는 금리 인하 카드를 꺼냈어야 합니다. 환율 하락도 막고,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국제 금융위기에도 대처해야 하니까요.

그러자니 급등하고 있는 물가가 문제입니다. 최근 3년 만에 3%대로 올라선 소비자물가는 내년 상반기엔 4%대로 치솟을 전망입니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합니다. ‘금리를 올리자니 환율이 울고, 내리자니 물가가 우는’ 상황입니다. 한은이 금리를 계속 동결하는 속사정입니다.

게다가 내년엔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틀림없이 경기 활성화를 최우선 과제로 들고 나올 겁니다. 금리 인하 압력이 커진다는 얘기죠. ‘매파(강경파)’로 불리는 이 총재는 금리 인상보다는 인하에 더 소극적입니다. 이 총재가 자기부상열차란 별명을 지킬지, 일반열차로 변신할지 궁금해집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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