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대통령'이 아르헨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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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右> 아르헨티나 신임 대통령이 10일 취임식장에서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AP=연합뉴스]

'어제는 퍼스트레이디, 오늘은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54)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가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10일 취임했다. 이로써 페르난데스는 역사상 드물게 '남편에서 부인으로' 바통을 주고받은 '부부 대통령'이자 아르헨티나 최초의 선출직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1974년 후안 페론 대통령이 사망한 뒤 부인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적은 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선거로 여성 대통령이 취임하기는 처음이다.

◆"남편의 정책 바꾸지 않겠다"=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을 상징하는 띠와 지휘봉을 건네받았다. 페르난데스는 취임사에서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추진해온 경제정책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남편이 2003년 취임하기 전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붕괴돼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상태였다"며 "그러나 대통령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집권 이후 9%대를 유지한 경제성장률, 2002년 22%에서 2007년 8.5%로 낮아진 실업률 등을 암시한 것이다. 페르난데스는 이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경제정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재의 경제성장세를 유지해 아르헨티나를 빈곤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페르난데스의 통치력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며 "심각한 인플레와 범죄, 전력과 천연가스 부족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전했다.

◆"부부가 대통령"=외신들은 앞으로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BBC는 "페르난데스는 모든 결정은 자기 스스로 내리겠다고 계속 강조해 왔다"며 "그러나 정작 취임식에서는 전 대통령인 남편이 정치에서 퇴진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고 전했다. BBC와 FT는 페르난데스가 취임사에서 "나를 위해, 또 국민을 위해 키르치네르도 계속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한 발언에 특히 주목했다.

반면 로이터통신은 "키르치네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페르난데스가 그의 핵심 참모 역할을 해왔다"며 "이제는 반대로 전 대통령이 부인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페르난데스는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참모진을 그대로 승계했다.

로이터는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자신이 왜 출마하지 않고 부인을 내세웠는지 설명한 적이 없다"며 "부인에 이어 남편이 대통령으로 다시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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