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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경찰국장들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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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에선 각종 이익단체들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을 상대로 활발한 로비활동을 벌인다. 그 중에서도 전국총기협회(NRA)는 힘있는 단체라 할 수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친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난해 4월 NRA 연차총회에 참석해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나의 형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연설하기도 했다.

미국 주요 도시의 경찰국장들이 이런 막강한 NRA가 밀고 있는 한 법안에 대항하고 나섰다. 주(州)나 연방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한 총기류 제조.판매업자들에게 소송 면제권을 주자는 내용의 법안이다. 예컨대 범인이 총기류 판매점에서 슬쩍 한 총으로 사람을 죽인 경우 피해자 가족들이 그 판매상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하원을 통과한 이 법안은 다음달 초 상원 표결을 앞두고 있으며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상원의원 59명이 지지하고 있어 한명만 더 확보하면 통과는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경찰간부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윌리엄 브래튼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장이 지난주 기자회견을 자청해 법안의 부당성을 공격하면서 50개 대도시의 시경국장들이 이에 동참하고 나섰다.

경찰 간부들은 "기존의 법과 제도로도 총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지금보다 규제를 완화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법안에 반대하는 전면 광고를 워싱턴 포스트에 게재한 것을 필두로 다른 신문과 방송으로 광고전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지난해 5월 뉴욕 연방지법의 배심원단은 총기업자들의 판매관행이 흑인 및 히스패닉 사회의 폭력을 조장한다는 한 시민단체의 주장을 이유 없는 것으로 평결했다. 범죄에 사용되는 총은 대부분 정규 판매점이 아닌 불법조직에서 구입한 것이라는 총기업자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뻔히 해로운 줄 알면서도 담배를 피워 병을 얻은 사람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내는 소송에선 종종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오는 미국 사회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총에 관해선 유독 업자 편이 많은 것 같다.

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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