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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중간광고 논란' 시청자 주권 왜 중요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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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지상파 방송에 중간광고를 허용할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중간광고는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도중에 끼워넣는 광고를 말한다.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중간광고가 양질의 TV 프로그램을 제작할 재원을 마련하는 데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측은 상업성 추구로 프로그램 질이 나빠질 뿐 아니라 시청자 주권도 훼손된다고 말한다.

중간광고 도입 논란을 계기로 시청자 주권의 개념과 근거를 공부하고, 다매체 시대에 시청자 주권이 어떻게 바뀔지 짚어 본다.

◆ 시청자 주권이란=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최종 결정하는 최고 권력을 뜻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국민주권을 채택하고 있다. 이 개념이 방송에 적용된 것이 바로 시청자 주권이다. 방송의 주인은 시청자라는 것이다. 시청자는 TV 방송을 보는 사람으로, 어린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불특정 다수를 일컫는다. 시청자 주권은 방송에 참여해 자신의 견해를 펴는 '방송 접근권'과 방송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얻는 '정보 접근권', 방송에 의한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에서 구제받을 권리의 보장으로 실현된다. 법에 규정된 권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암묵적으로 주어진 권리다. 2000년 발효된 통합방송법은 제정 목적이나 시청자 권익 보호 규정을 통해 이 권리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 시청자가 왜 방송의 주인일까=우선 방송의 정보 전달 매개체인 전파의 특수한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신문사는 자신이 소유한 제지에 인쇄하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반면 방송사는 공공자산(공공재)인 전파에 정보를 실어 시청자에게 보낸다. 전파가 공공재 성격을 띠는 것은 전파의 희소성에서 연유한다. 전파가 희소성을 가지는 것은 쓸 수 있는 전파는 한정돼 있지만, 이를 사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서다.

전파가 희소성을 가지는 것은 쓸 수 있는 전파는 한정돼 있지만, 이를 사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서다. 전파 관련 국제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규정에 따르면 전파는 3000GHz(기가 헤르츠) 이하 주파수다.

정보통신부 주종옥 주파수정책팀장은 "우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은 9K㎐~275G㎐"라며 "주파수가 9K㎐ 이하이거나 275G㎐ 이상이면 정보 전달 능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정보통신부는 ITU 규정에 따라 주파수 대역을 세분화해 방송.통신용 등 41가지 용도로 잘게 나눴다. 지상파 방송의 주파수는 채널 2~69번까지로 한정된다. 이를 용도별로 각 업체에 주파수를 할당하거나 배정한다.

방송사는 전파 소유권을 갖는 게 아니라 이용할 권리를 위임받아 일정 기간 동안 국민을 위해 활용한다. 따라서 방송사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별도 심사를 거쳐 전파 재허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파 희소성은 시청자 주권의 근거이지만, 방송이 공공성.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나 방송위원회는 방송을 규제.심의한다.

◆ 소비자 주권과 시청자 주권=소비자 주권을 시청자 주권으로 연결하는 시각도 있다. 시청자가 방송프로그램의 소비자라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시청자는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 소비자의 선택권이라는 의미다.

또 방송은 시청자의 돈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시청자 주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시청자가 방송사 재원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방송사 재원은 준조세 성격의 시청료와 간접세 형태의 광고료로 나뉜다.

광고의 경우 방송사가 광고주들에게 시청자 접근권을 판매하는 것이다. 시청자도 방송 광고를 통해 물품을 구매하면서 간접적으로 광고비를 낸다. 하지만 시청자를 단순 소비자로 보는 시각은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어떻게 표출되나=미디어수용자주권연대 노영란 운영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시청자 주권운동은 독재권력과 밀착된 방송을 감시.비판하기 위한 시민운동에서 비롯됐다"며 "1986년 KBS 시청료 거부운동이 바로 그 예"라고 말했다. 93년 시민단체가 주도한 'TV 끄기 운동'의 경우 방송의 지나친 상업화를 막고 저질 프로그램을 추방하기 위해 추진됐다.

통합방송법에는 시청자 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됐다. 시청자는 방송사 시청자위원회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의견을 적극 표현할 수 있다. 시청자가 TV 드라마 내용까지 바꾸기도 한다. 이는 드라마 '폐인'과 같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능동적 시청자가 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시청자 주권 어떻게 바뀔까=인터넷.위성방송 등 뉴미디어를 통해 다채널.다매체 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청자 주권의 근거인 전파의 희소성.공공성이 퇴색됐다는 지적이 있다. 채널 수가 대폭 늘어난 데다 시청자가 방송에 접근할 기회가 과거보다 훨씬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 주권은 다매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매체는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며, 방송의 주요 재원도 유료 가입비나 광고료 형태로 시청자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매체나 채널이 늘어도 공공성 확보를 위한 법 규제 때문에 전파의 희소성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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