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잣거리 풍경] 정치 나선 전문경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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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계안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 저잣거리의 화제다.

그의 총선 출사표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파격 그 자체다. 평소 "바둑 10급짜리 하수(下手) 10명이 힘을 합해 1급짜리 고수(高手) 1명과 바둑을 두면 누가 이기겠느냐"고 묻던 인물이 이계안씨다. 그런 사고를 갖고 있는 이계안씨가 "아마추어가 활개치는 시대, 리더 부재의 시대"를 거론하지 않을 리 없다.

정치인 이계안은 "열린우리당과 나의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고 '출사의 변'을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다. 총선을 위해 쓸 만한 공직자까지 '올 인'하며 '정치만 챙기는' 정당과 30년 동안 '경제만 챙기던' 전문경영인은 물과 기름이다. "그걸 알면서 왜 갔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적당(敵黨)이었던 민자당 입당시 내놓은 '안방론'을 상기시켰다. "8년째 1만달러에 머물러 있는 경제를 다시 세우려면 '안방'인 여당에 가는 게 당연한 선택 아니냐"는 설명이다.

"앞으로 4년만 정치하겠다는 게 나의 계획이다. 盧대통령 임기가 이제 4년 남았으니 '여당 내 보수' 그리고 '여당 내 야당'을 표방하다 물러나면 나의 임무는 끝난다"는 게 그의 일정표다.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이라는 이미지만 잘 관리하고 있으면 진대제 정통부 장관처럼 영입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장관은 해당부처의 수장(首長)이지만 여전히 '을(乙)'의 입장일 뿐 '갑(甲)'이 아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선 '갑'이 아닌 한, 경제의 '큰 줄기'까지 바로잡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경제의 큰 줄기'라는 화두(話頭)는 아마도 "열린우리당이 가장 비(非)시장경제적인 당"이라는 그의 비판 속에 녹아있는지 모른다. "가장 비시장경제적인 사례를 구체적으로 대보라"고 다그쳤다. 그는 거침없이 "접대비 상한(上限) 50만원이야말로 가장 비시장경제적인 발상"이라고 대답했다. "그건 국세청이 한 일이지 열린우리당이 한 일이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국세청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눈치보다 (속된 말로) '오버'한 것이니 초록동색(草綠同色) 아니냐"고 답했다.

"시장경제는 (시장)바닥을 중시하는 경제"라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그는 "시장바닥에서 사채(私債) 써보지도 않은 사람, '카드 돌려막기' 해보지 않은 사람은 금융개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세금을 줄여보려고 세무서 들락거려보지 않은 사람은 세제개혁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건 1994년 대통령에 출마했던 고(故) 정주영 회장이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비판할 때 쓰던 논리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시장바닥을 중시하는 주장에 시장경제의 참된 진리가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난제는 노사분규다. 노사분규 없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만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창출 없는 성장(成長)'의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대안은 노사평화밖에 없다는 뜻이다.

열린우리당 '입당선물(入黨膳物)'로 '쓴소리'부터 내놓은 그를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대우하고 활용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열린우리당이 정말로 '열려 있는 당(黨)'인지와 '아마추어 당(黨)'인지는 그를 대하는 태도와 대응방식에서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양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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