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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경제학 “식량이냐, 연료냐” 국제적 갈등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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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19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갈란드의 축산업자인 앨프리드 스미스는 지난해부터 돼지에게 유효기간이 지난 바나나 칩과 건포도, 과자 등을 먹이고 있다. 사료 값이 너무 올라 조금이라도 원가를 줄여보기 위해서다. 그는 “한 마리당 사육비를 8달러씩 절약할 수 있다”며 “돼지들도 달콤한 사료를 좋아하고, 품질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한 미국 축산농가의 풍경이다. 사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옥수수 값이 급등하면서 세계 최대의 재배국이자 수출국인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옥수수 값은 현물 가격과 가장 가까운 시카고 상업거래소의 12월 인도분을 기준으로 부셀(27.216㎏)당 3.9달러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꼭 2년 전인 2005년 12월 초 1.85달러에서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값이 이렇게 뛴 것은 유가 상승으로 옥수수에서 나오는 바이오에탄올의 경제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옥수수 열매와 줄기 1t을 처리하면 휘발유를 대신해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에탄올 378ℓ를 얻을 수 있다. 1에이커 땅에서 1514ℓ가 나온다. 사탕수수를 가공하면 옥수수보다 많은 에이커당 2233ℓ를 얻을 수 있지만 열대작물이라는 한계가 있다. 미국과 호주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은 옥수수 재배에 적합한 온대지방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나라는 최근 원유 값이 급등하자 옥수수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에탄올 생산으로 돌리고 있다. 공급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옥수수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세계 옥수수 생산의 38.9%를 생산해 이 중 68.1%를 수출했다. 바이오에탄올 생산엔 전체의 15%가량이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최근 2년간 바이오에탄올 생산량이 80% 증가하면서 식량과 사료용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 급기야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 굶을 지경이 됐다. 지난 7월 멕시코에선 주식인 ‘토티야’의 주재료인 옥수수 값이 3배 이상으로 뛰면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1994년 미국·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뒤 미국에서 값싸게 들여오던 옥수수 수입량이 갑자기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2위 옥수수 수입국인 한국에서도 새우깡과 물엿·라면·콘플레이크 등 옥수수를 주재료로 하는 제품의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다. 중국도 옥수수 품귀에 한몫을 하고 있다. 국민소득에 비례해 육류 소비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에서 수입하는 옥수수의 양을 크게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의 몸값을 높이는 것은 열매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선 옥수수 수염차가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한 제약사가 내놓은 상품이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면서 식품업체들이 잇따라 유사제품을 내놓았다. 시장규모가 2400억원으로 커지면서 국내에서 원료를 조달하지 못해 중국에서까지 들여오고 있다. 옥수수 열매와 줄기에서 나오는 섬유와 전분은 바이오플라스틱의 재료가 되고 있다. 일본의 후지쓰사는 지난 8월 옥수수 전분을 주원료로 한 폴리유산수지(PLA)를 채용, 재활용률을 93%로 끌어올린 ‘옥수수노트북’을 내놓았다. 후지쓰는 이 제품이 생분해성이라 땅에 묻히면 썩는 친환경임을 강조하고 있다. 도요타도 옥수수를 가공하는 공장을 따로 세워 스페어타이어 커버 등 일부 부품에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다우케미칼과 농산물 업체인 카길은 2년 전 옥수수 플라스틱을 공동 개발했다. 현재 맥도널드 유럽매장의 음료수 용기와 소니 워크맨의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다. 듀폰도 지난해 옥수수 섬유가 주성분인 플라스틱·섬유 소재 ‘소로나’를 개발해 올해부터 상업생산에 착수했다.

옥수수 줄기도 버려지지 않는다. 줄기는 에탄올 생산에도 쓰이지만 연간 6000억원 규모인 전 세계 자일리톨 시장의 주원료가 되고 있다. 에탄올 생산을 위한 즙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를 화학처리하면 자일리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산되는 양이 ‘핀란드산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것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국내 바이오벤처인 엘피바이오는 최근 KAIST 김정회 교수팀과 공동으로 화학적 방식이 아닌 생물학적 방식을 사용하는 자일리톨 대량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옥수수 줄기에서 추출한 알코올에 세균을 넣어 자일리톨을 만드는 이 방식은 환경오염이 적고 생산단가도 낮다.

지난해 옥수수펀드를 내놓은 하나대투증권 이완수 과장은 “미국 등이 옥수수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재배지가 줄어든 다른 곡물의 가격까지 올라가는 등 옥수수가 곡물 파동의 주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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