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공화국' 노무현 정부 매달 2.6개 위원회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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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 정부 들어 새로 만든 각종 위원회가 모두 156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매달 2.6개꼴로 위원회가 생긴 것이다. 그 결과 정부 위원회는 현재 416개나 된다. 그 가운데는 5년 동안 회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포함해 각종 정부 위원회가 늘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위원회 공화국'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학계에서는 "다음 정부에서는 '위원회 공화국'의 허실을 정확히 짚은 뒤 과감한 구조조정과 역할 재정립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3년 이후 회의 한 차례 없는 위원회'=행정자치부는 6일 2003년 현 정부 출범 당시 364개였던 정부 위원회가 11월 말 현재 416개로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5년 사이 52개가 순증한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따져 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정부는 2003년에 64개, 2005년에 40개 등 총 104개의 정부 위원회를 통폐합했다. 따라서 현 정부 들어 실제로 늘어난 정부 위원회는 156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는 활동이 거의 없는 위원회가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 소속의 중앙구호협의위원회는 1969년 설립됐다. 당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외국 단체의 원조품을 배분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2001년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위원도 전혀 선임하지 않았고, 예산 한푼 쓰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위원회는 지금도 정부의 공식 위원회 중 하나로 버젓이 남아 있다.

복지부 산하에 위원이 선임돼 있는 위원회는 모두 37개. 이 중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 4개 위원회는 지난해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소속 군인고충심사위원회도 마찬가지다. 2005~2006년 2년간 회의를 열고 안건을 심의한 적이 전혀 없었다. 각 군 차원에서 거의 모든 민원을 해결하고 있어 정작 국방부 본부에 설치된 위원회에는 안건이 올라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군 인사법에 근거 법이 마련돼 있다는 이유로 위원회를 계속 고수해 왔다.

환경부 소속 영향평가조정협의회는 환경.교통.재해 등에 관한 영향평가를 할 때 부처 간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심의.조정하는 기능을 맡도록 돼 있다. 위원은 환경부와 건설교통부.소방방재청 담당 공무원과 대학교수.연구원 등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2003년 이후 회의 실적은 전무하다.

관련 부처들이 비공식적으로 협의를 진행하다 보니 굳이 공식 위원회를 소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위원회 대폭 정비 불가피"=유명무실한 위원회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행자부가 뒤늦게 실태 파악에 나선 뒤 6일 정비 방안을 내놓았다. 행자부는 중앙구호협의위원회 등 17개 정부 위원회를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행정 여건이 변화했거나 설치 목적이 이미 달성돼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어진 위원회 12개는 완전 폐지하고, 나머지 5개는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위원회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또 41개 위원회는 위원장 직급을 하향 조정하고 주관 부처를 바꾸기로 했다. 13개 위원회는 위원 위촉 기준을 확대해 진입 장벽을 낮추기로 했다. 19개 위원회는 위원 수를 줄이고 민간위원의 비율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정부 부처와 업무 기능이 중복되는 위원회나 효율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위원회는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며 "차기 정부는 정부 위원회 구조조정을 주요 과제로 삼고 과감한 개혁작업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박신홍.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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