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칼럼

정책 경쟁으로 승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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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북한의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이 서울을 다녀갔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도 만났다. 김정일의 측근 중의 측근인 김양건의 서울 방문이 예사롭지 않은데도 어느 후보도 그가 왜 왔는지를 묻지 않았다. 김양건이 서울에 온 시기와 거의 비슷하게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은 평양으로, 청와대의 백종천 안보보좌관은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한국은 4개국 정상들에 의한 종전선언을 갈망하고, 미국은 북한에 의한 핵 시설 불능화와 신고와 핵 포기 약속으로 ‘핵 문제 해결 끝’을 선언할 기미가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고 있다는 의심이 가는데 대선 후보들은 관심을 안 보인다.

2008년 대선을 앞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외교적인 업적이 아쉽다. 그래서 북한의 핵 폐기 전 단계에서 핵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워싱턴의 분위기다. 그렇게 되면 한·미 공조의 구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지킨다는 보장이 없는 핵 폐기 약속을 핵 문제 해결로 볼 수 있는가.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펄쩍 뛸 일인데도 반응이 없다. 그런 움직임을 감지하고나 있는가. 금시초문이면 11월 16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후쿠다 일본 총리에게 한 말의 내용을 알아보라.

노무현의 386 정부는 가진 자에 대한 한풀이의 마지막 발길질로 종부세 폭탄을 투하했다. 종부세 폭탄에 신음하는 사람은 40만 명에 육박한다. 지난해에 4500억원 거둔 종부세가 올해는 1조2400억원이 넘는다니 2.7배의 폭증이다. 지난해에 비해 종부세가 수백%나 오른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종부세 고지서를 받아 든 납세자들의 분노와 비명소리에 노 대통령과 그의 386 완장부대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겠는데 대선 후보들은 집권하면 종부세를 조정하겠다는 막연하고 미지근한 말만 늘어놓는다.

기자실 폐쇄를 통한 취재제한은 노무현 386 정부의 시대역행적인 반동의 극치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기자실을 빼앗긴 기자들이 복도에서 기사를 쓰고 항의 농성하는 현장을 둘러보지 않는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같이 정부 없는 신문과 신문 없는 정부 중에서라면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는 고상한 말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식 언론탄압의 현장에 가서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일부 언론에 대한 원한에서 전체 언론에 한풀이를 하는 반지성적·반시대적인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이다.

김경준 광소곡은 끝났다. 그러나 이명박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은 사건종료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운동을 일으키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유권자들이 입는다. 지금까지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한테서 들은 말은 대운하 파겠다, 철의 실크로드 놓겠다, 입시제도 개선하겠다 같은 거대 이슈뿐이다.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시대에 중후장대(重厚長大)한 토목공사가 우선순위에 맞는지 실증적인 토론이 없다. 유권자들은 묻지마식의 투표를 하란 말인가. 검찰 발표에 이의가 있으면 촛불시위나 특검 제의에 앞서 의문점을 조목조목 제시해 검찰의 설명을 구하라. 판단은 유권자가 한다. 네거티브 선거가 정책토론의 설 자리를 빼앗아선 안 된다. 정책토론으로 돌아가라. 일본 아사히신문 사설(11월 28일자)이 이 나라의 대선 후보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동아시아가 크게 움직이고 있다. 주변의 눈도 의식한 건설적인 논쟁을 기대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