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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권사 보고서엔‘Buy’만 있고‘Sell’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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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증시에 ‘사라(Buy)’는 추천은 넘쳐나는데 ‘팔라(Sell)’는 보고서는 보기 힘들다. 증권정보업체 Fn가이드에 따르면 올 한 해 29개 국내 증권사가 낸 1만7792건의 보고서(12월 3일 기준) 가운데 매도 의견을 밝힌 것은 32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로 따지면 0.18%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매수 추천은 전체의 85%를 넘어섰다. 나머지는 ‘중립’(14.08%) 또는 ‘의견 없음’(0.2%)으로 조사됐다.

올해 매도 의견 비율은 지난해 매도 추천 비중(2%·증권업협회 조사)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증권사별로는 동부증권이 전체 리포트 중 매도 의견이 2.45%(489건 중 12건)로 가장 많았다. 전체 29개 증권사 중 올 들어 매도 의견을 한 번도 안 낸 곳이 65%인 19곳에 달한다.

◆매도 권고 없는 증권가=매도 보고서란 ‘기업의 실적이 나쁘거나 고평가돼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니 해당 주식을 팔라’는 증권사 리포트를 말한다. 하지만 매도 추천 이후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 기업보다 애널리스트에게 책임을 묻는 투자자가 많아 문제다.

동양종금증권의 황규원 연구원에게 올 하반기는 ‘최악의 시간’이었다. 올 8월 가스전 추정 매장량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며 대우인터내셔널의 매도 의견을 발표했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해당 기업체는 물론 투자자들도 최근까지 ‘주가조작’이라며 황 연구원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금융감독원에도 불려가 조사받아야 했다. 결론은 ‘무혐의’. 황 연구원은 “지난 몇 달간 내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조용히 지내겠다”고 말했다.

CJ투자증권의 최대식 연구원도 마찬가지다. 올 1월 현대오토넷의 매도 보고서를 냈다가 홍역을 치렀다. 투자자들의 항의로 사흘간 출근도 못 했고 10여 년간 써 오던 휴대전화 번호마저 바꿨다. 한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매도 보고서를 함부로 냈다가는 영업하기 힘든 게 증권업계의 현실”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 증권회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투자자 보호 위해 매도 의견도 내야=이런 점에서 서울증권 박희운 센터장은 증시의 ‘이단아’로 꼽힌다. 자산운용사 애널리스트에서 서울증권으로 옮기며 그는 ‘매도 의견도 과감히 내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실제로 9월 이후 최근까지 나온 증권업계 전체 매도 보고서 12개 중 절반이 서울증권 리서치센터 보고서였다. 동아제약·동국제강·현대제철·KTF·한미약품 등이 그 대상이 됐다.

박 센터장은 “처음엔 매도 보고서를 내면서 걱정됐던 게 사실”이라며 “미리 공식 선언을 한 덕분인지 몰라도 아직 해당 기업이나 투자자들의 항의를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를 보호하려면 앞으로 매도 보고서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미국 증권사들이 발표한 기업 분석 보고서 가운데 ‘매도 의견’이 7%라고 보도했다. 한국보다 많지만 시간이 갈수록 매도 의견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이 통신은 “4년 전인 2003년에는 매도 의견 비중이 11%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매도 보고서를 과감하게 내도록) 권유는 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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