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건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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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지난달 29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의 만찬 회동을 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들어서고 있다. 김 통전부장은 2박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일 북한으로 돌아갔다. [중앙포토]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서울을 다녀갔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이다. 김 부장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3일에는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워싱턴을 찾는다. 이 때문에 방문기간 중 노무현 대통령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두루 만난 김 부장의 행적을 둘러싼 궁금증이 깊어지고 있다.

우선 방문 목적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합의문이나 공동보도문도 발표되지 않았다. 이는 통전부장으로는 처음이었던 2009년 9월 김용순 부장(2003년 9월 사망)의 방문 때와 대조적이다. 그는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식 조기 개최 등 7개 항에 합의했었다. 50분에 걸친 김양건 부장과 노 대통령의 면담 내용이 자세히 공개되지 않은 것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서울 방문 마지막 날 김 부장이 일행과 따로 떨어져 혼자 호텔에 있었던 '공백의 2시간'도 의문점이다. 방문 마지막 날인 1일 오후 김 부장은 "피곤해 쉬겠다"며 당초 예정됐던 SK텔레콤 참관 일정에 불참했다. 최승철 부부장 등 다른 일행이 이 행사에 갔다 온 뒤에야 김만복 국정원장과 서훈 3차장, 통일부 장.차관을 만났다. 김 부장이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 머문 2시간 동안 누구를 만났는지 여러 추측들이 나온다.

최대의 미스터리는 그가 서울을 다녀간 지 이틀 만에 백종천 안보실장의 방미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김 부장의 서울 방문을 계기로 한국 정부를 매개로 한 북.미 간접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오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때마침 북핵 6자 회담의 미국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도 김 부장과 같은 시기에 서울에 머무르다 3일 평양에 들어간다.

이런 흐름 속에는 한반도 종전 4자 정상선언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부장의 서울 방문을 추진한 주체 역시 청와대다. 김 부장이 '북핵의 완전한 폐기 이전에라도 평화협정 추진을 위한 4자 정상선언을 할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 공감을 표했다는 얘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돌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 부장의 서울 방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평양 방문 ▶백 실장의 워싱턴 방문이 갖는 공통 분모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며, 더 나아가 4자 정상선언을 성사시키기 위한 정지 작업의 수순으로 해석된다. 남북한이 2인3각의 협력 체제로 미국에 4자 정상선언의 참여를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북.미 관계 개선의 중대 분수령은 힐 차관보의 방북 이후"라며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북.미 관계 개선의 속도와 4자 정상선언의 가능성이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승희.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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