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3대째 회장이 비리로 구속된 농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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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법원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에 대해 징역 5년의 형을 확정했다. 정 회장은 서울 양재동 부지를 현대자동차에 시가보다 싸게 파는 대가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었다. 이로써 1988년 이후 직선으로 뽑힌 1~3대 농협중앙회장이 모두 임기 중 비리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농협이 비리의 온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부터 올 6월까지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 임직원이 고객 돈을 횡령·유용하다 적발된 규모가 700억원을 넘었다. 국가청렴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비위 면직자가 가장 많은 공직유관단체가 바로 농협중앙회다. 중앙회장부터 말단까지 곳곳이 썩은 것이다.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농협의 구조적 문제란 얘기다. 정부는 2004년부터 10년간 119조원을 농촌에 투입하고 있다. 이런 정책자금의 상당 부분이 농협을 통해 나간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격이다.

이 지경이 된 데는 역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권 초기에 농협 개혁을 외치다 농민 표를 의식해 슬그머니 그만두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 결과 농협은 몸집을 불리면서 240만 회원을 거느린 정치권력이 됐다. 권한은 막중하지만 감시는 허술했다. 농협은 별천지를 구가했지만 정작 주인인 농민은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국민은 농촌에 대는 세금 때문에 허리가 휜다. 비리로 줄줄이 구속되는 농협 임직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자괴감을 생각해 보았는가. 농협은 변명을 늘어놓기에 앞서 왜 비리가 끊이지 않는지 따져보고,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다음 정부는 힘있는 정권 초기에 농협을 수술하기 바란다. 농협을 이대로 두고는 개방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중앙회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금융 부문처럼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방만한 조직도 확 줄여야 할 것이다. 농협은 농산물을 제값 받고 제때 팔아주는 농민단체다. 농협이 이런 구실을 제대로 할 때 우리 농촌도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