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 띠는 '플래시몹'…'차떼기 추방' 21차례 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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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연락해 잠시 모여 퍼포먼스를 한 뒤 흩어지는 '플래시몹(flash mob)'이 늘면서 경찰이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플래시몹은 원래 특별한 의도를 담지 않은 '깜짝쇼'. 그러나 최근 정치성을 띤 모임에 활용되면서 위법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요즘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부패 추방 번개행동'이 그런 유형. '불법 대선자금 진상규명 시민조사단' 회원 등 40여명은 지난 13일 저녁 길거리에서 "'차떼기' 부패 정치를 추방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행인들에게 큰절을 하곤 곧바로 해산했다. 지난달 8일 시작된 이 퍼포먼스는 벌써 21번이나 열렸다. 이들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인터넷을 통해 모임 장소를 정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 모임인 '노사모'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최근 "부산의 플래시몹은 참신한 아이디어" "바로 이거다"는 등의 글이 올라와 이런 유형의 행사가 확산할 조짐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언론 비판 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에 싸리비를 들고 나타나 "더러운 언론, 더러운 정치"를 외치고 흩어지기도 했다.

이들 단체는 "현행 집시법상 집회를 열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집회가 아니면서도 주장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집시법 제6조에 따르면 다수인이 공동으로 불특정 다수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위를 주관하는 단체는 행사 48시간 전 관할 경찰서 등에 집회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플래시몹은 '깜짝' 퍼포먼스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집시법상 집회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또 대부분 행사 직전에 참가자들에게 일정을 공지하기 때문에 집회로 보더라도 적발하기 힘들다. 그들의 구호나 몸짓이 특정 정당.후보에 대한 찬반 의사를 밝히는 것인지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경찰은 정치성 플래시몹이 신고 대상 집회인지, 또 부정 선거운동인지에 대해 아직 확실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박수현 경비1과장은 "짧은 시간 내 이뤄지기 때문에 집시법을 엄격히 적용하기 어렵다"면서도 "문화.체육행사는 단속할 필요가 없겠지만 정치성이 뚜렷한 행사에 대해서는 단속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배노필 기자

◇플래시몹=플래시크라우드(flashcrowd.갑자기 접속자가 폭증하는 현상)와 스마트몹(smartmob.동일한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집단)의 합성어.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을 이용해 이미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현장에서 주어진 행동을 짧은 시간에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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