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학’이 마련한 ‘『악의 꽃』 출간 150주년 기념 특집’에서 이가림 인하대 교수는 ‘저주받은 시인의 승리’란 글을 통해 보들레르를 20세기 상징주의 문학의 원류로 자리매김했다.
이 교수는 “보들레르는 『악의 꽃』이라는 단 한권의 시집으로 세계 문학사를 제패하는 불멸의 신화를 창조했다”며 “20세기 시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 기욤 아폴리네르, 폴 발레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시인인 이브 본느푸아와 미셸 드기 같은 이들도 보들레르의 혈통을 이어받은 상징주의의 후예 ”라고 평가했다.
『악의 꽃』은 시인이 스무살 무렵부터 25년동안 쓴 시를 엮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높은 평가와 출간 당시의 평가는 크게 상반된다. 출간 때 몇몇 옹호자들의 지지에 불구하고 대중과 평단은 극심한 비판을 쏟아부었고 끝내 시인은 외설죄로 피소되기 까지 했다.
좌절한 시인은 실어증에 걸리는 등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다 반신 불수상태로 사망한다. 프랑스 최고재판소는 1세기가 지난 1949년에 이르러서야 시인에게 내려진 유죄판결을 정식 파기했다.
이같은 ‘『악의 꽃』 수난사’를 윤영애 상명대 교수의 꼼꼼한 정리로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윤 교수는 ‘『악의 꽃』, 그 수난과 영광의 역사’라는 글을 통해 보들레르와 『악의 꽃』이 겪어야했던 파란만장한 고난을 재조명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1857년 보들레르는 법원으로부터 벌금 300프랑과 함께 6편의 시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보수지 ‘르피가로’는 “보들레르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 책은 광란과 마음의 온갖 부패에 개방된 병원이다”라는 혹평을 내보내기도 했다. 오늘날 ‘상징주의 시의 경전’ ‘현대시의 복음서’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악의 꽃』을 두고 일어난 사건이라기엔 믿기지 않는 혹평을 받았던 셈이다.
윤 교수는 “『악의 꽃』은 오랜 시간에 걸친 끈질긴 인내와 정성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또 한 인간의 삶의 역사를 동반했다는 점에서 보들레르의 삶 그 자체와 『악의 꽃』을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동규 건국대 교수는 ‘한국 현대시에 끼친 보들레르의 영향’을 통해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정지용의 ‘비’ 등과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 ‘저녁의 하모니’ 등을 비교했다.
이에스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