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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한 권으로 … 문학사 제패한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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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올해는 ‘프랑스 현대시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샤를 보를레르(1821~67)의 시집『악의 꽃』초판이 발간된 지 150주년 되는 해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연초부터 도서전, 학술회, 낭송회, 연극, 콘서트 등 기념행사가 활발했다. 국내에서는 별다른 행사가 열리지 않아 아쉬움이 지적되는 가운데 계간 ‘시와 시학’ 겨울호가 ‘보들레르 다시보기’를 선도하고 나섰다.

 ‘시와 시학’이 마련한 ‘『악의 꽃』 출간 150주년 기념 특집’에서 이가림 인하대 교수는 ‘저주받은 시인의 승리’란 글을 통해 보들레르를 20세기 상징주의 문학의 원류로 자리매김했다.

이 교수는 “보들레르는 『악의 꽃』이라는 단 한권의 시집으로 세계 문학사를 제패하는 불멸의 신화를 창조했다”며 “20세기 시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 기욤 아폴리네르, 폴 발레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시인인 이브 본느푸아와 미셸 드기 같은 이들도 보들레르의 혈통을 이어받은 상징주의의 후예 ”라고 평가했다.

  『악의 꽃』은 시인이 스무살 무렵부터 25년동안 쓴 시를 엮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높은 평가와 출간 당시의 평가는 크게 상반된다. 출간 때 몇몇 옹호자들의 지지에 불구하고 대중과 평단은 극심한 비판을 쏟아부었고 끝내 시인은 외설죄로 피소되기 까지 했다.

좌절한 시인은 실어증에 걸리는 등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다 반신 불수상태로 사망한다. 프랑스 최고재판소는 1세기가 지난 1949년에 이르러서야 시인에게 내려진 유죄판결을 정식 파기했다.

 이같은 ‘『악의 꽃』 수난사’를 윤영애 상명대 교수의 꼼꼼한 정리로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윤 교수는 ‘『악의 꽃』, 그 수난과 영광의 역사’라는 글을 통해 보들레르와 『악의 꽃』이 겪어야했던 파란만장한 고난을 재조명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1857년 보들레르는 법원으로부터 벌금 300프랑과 함께 6편의 시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보수지 ‘르피가로’는 “보들레르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 책은 광란과 마음의 온갖 부패에 개방된 병원이다”라는 혹평을 내보내기도 했다. 오늘날 ‘상징주의 시의 경전’ ‘현대시의 복음서’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악의 꽃』을 두고 일어난 사건이라기엔 믿기지 않는 혹평을 받았던 셈이다.

윤 교수는 “『악의 꽃』은 오랜 시간에 걸친 끈질긴 인내와 정성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또 한 인간의 삶의 역사를 동반했다는 점에서 보들레르의 삶 그 자체와 『악의 꽃』을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동규 건국대 교수는 ‘한국 현대시에 끼친 보들레르의 영향’을 통해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정지용의 ‘비’ 등과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 ‘저녁의 하모니’ 등을 비교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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