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미국서 큰판 벌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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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SK텔레콤이 과연 미국 시장에서 큰 판을 벌일 수 있을까. 이 회사는 30일 미국 3위의 이동통신사인 ‘스프린트 넥스텔’에 지분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은 “스프린트 넥스텔에 재무적 투자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었다.

 또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날 “SK텔레콤과 미국의 사모펀드인 프로비던스 에퀴티 파트너스가 손잡고 지난달 10일 스프린트 넥스텔에 50억 달러를 투자하는 제안을 했다”며 “그러나 스프린트 넥스텔 이사회가 이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SK텔레콤 측이 스프린트 넥스텔에 보낸 투자 제의 메일을 공개하면서 "SK텔레콤이 이사회 자리를 요구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와 다른 뉘앙스의 보도를 했다. “일부 이사가 투자 제안을 거부했지만 이사 전원이 이를 검토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SK텔레콤 역시 “공식적인 거절 답신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종합하면 협상이 순탄치는 않지만 완전 결렬된 모양새는 아니다.

 SK텔레콤이 스프린트 넥스텔에 투자하려는 것은 정체된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한 수순이다. 실제로 김신배 사장은 최근 이방형 부사장에게 국내 영업 전반을 총괄토록 하고 자신은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다듬는 데 다 걸기를 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이 최근 임원회의에서 “중국 시장이 크지만 역시 미국에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후 김 사장의 해외투자 의지는 한층 힘을 얻고 있다.

 2005년 스프린트와 넥스텔이 합쳐져 만들어진 스프린트 넥스텔은 이미 SK텔레콤과 인연을 맺고 있다. SK텔레콤은 스프린트의 통신망을 빌려 미국에서 ‘힐리오’란 이동통신 사업을 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스프린트 넥스텔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면 힐리오 사업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또 스프린트 넥스텔은 내년부터 미국 전역에서 서비스를 한다는 목표로 삼성전자와 함께 와이브로(휴대 인터넷) 망을 깔고 있어 SK텔레콤의 와이브로 기술이 스프린트 넥스텔을 통해 꽃을 피울 수도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6월 KT와 함께 세계 최초로 와이브로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이 희망대로 스프린트 넥스텔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외신에 따르면 스프린트 넥스텔은 최고경영자(CEO)가 공석이고 이사회도 옛 스프린트와 옛 넥스텔 출신으로 양분돼 있어 SK텔레콤의 투자 제의를 쉽게 결론낼 형편이 아니다. SK텔레콤과 사모펀드는 지분 투자와 함께 팀 도너휴 전 넥스텔 회장을 새 CEO로 앉힐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옛 스프린트 출신 이사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제안이 거부되면 주식시장에서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노릴 수도 있지만 이때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스프린트 넥스텔의 시가총액은 38조원(약 421억 달러)에 달한다. SK텔레콤은 국내에서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는 데도 1조원 이상을 써야 한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사업만 좋으면 돈을 대려는 곳은 많다”며 여운을 남겼다.

김원배 기자

◆스프린트 넥스텔=미국의 통신사인 스프린트와 넥스텔이 2005년 합병해 설립한 회사. 휴대전화 사업과 장거리 전화 사업을 하고 있다. 합병 이후 실적이 좋지 않아 올 들어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0월 게리 포시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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