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3.천국의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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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레 장팡 뒤 파라디』(Les Enfants Du Paradis)는 프랑스영화사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시정(詩情)어린 낭만주의 영화의 대표작이다.
『천국의 아이들』로 번역되는 이 영화(국내에선『인생유전』으로개봉)의 제목은 닭들이 올망졸망 붙어 앉아 있는 모습 같아 흔히「닭장」으로 불리는 극장 맨꼭대기의 싼 좌석에 앉아 있는 가난한 관객들을 뜻한다.
영화 구성은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사건이 많아 그대로 이름이 돼버린 「범죄의 대로」가 1부,그리고 2부「피에로」로 나누어진 가운데「범죄의 대로」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삶이 서사적으로 그려지며 전반부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반복된 다.
주인공들의 상황이 꽉 짜인 한 편의 완벽한 드라마를 연출하며극적으로 줄달음치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구조를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지닌 독특한 개성이야말로 이 영화가 애호인들의 추억속에 항상 살아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파리에서 팬터마임으로 환영받고 있던 밥티스트 드뷰로,최고 인기를 누리는 연극배우 프레드릭 르메트르,살인자로 교수형을 당한 실패한 시인 라스네르는 19세기의 실존인물들이다.
여기에 가랑스.백작 등의 인물을 창조,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승화된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낸 원작자 자크 프레베르는 지금도 프랑스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훌륭한 시인이다.
프레베르의 대사들은 보석같이 아름다우며,간결하고 순수하면서도잔인함이 내포돼 있어 마치 시 낭송을 듣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있다. 영화는 무대의 커튼이 열리면서 시작된다.주인공들이 무대생활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커튼으로「인생은 곧 연극」이란 작가의 생각을 강조하고 있는 이 영화는「우리들의 미래의 인생은아직 쓰여지지 않은 희곡」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 에 대한순수한 사랑과 함께 예술에 대한 찬미로 이어진다.
드뷰로:『꿈과 삶은 하나요.만일 그렇지 않다면 살 가치가 없소.나는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오,가랑스.
』 가랑스:『사랑이란 이렇게 쉬운 것인데….』 이 영화는 사랑이 경우와 환경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다양한 사랑법을 꽃에 비유해 말한다면 드뷰로는 꽃의 향기에 너무 도취돼 눈을 뜨고 그 꽃을 바라보는 것마저 두려워하고,그의 아내 나탈리는 꽃을 주려고 하지만 받는 사람이 없다.백작은 돈을 주고 꽃을 사려 하고,라스네르는 꽃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며,르메트르는 지나가다 꽃이 있으면 꺾어버리고 없어도 찾지 않는다.가랑스는 꽃향기에 묻혀 살면서 진실을 찾기를 원한다.
이와함께 이 영화에 대한 근원적 공감대는 창작작업이 무엇인지,무대예술이 무엇인지,연기자와 관객 사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보여준다는 점일 것이다.
라스네르:『어쨌든 참 신기합니다.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매일 밤 같은 시간에 그렇게 빨리 뛰게 하십니까.』 르메트르:『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나를 황홀하게 하는 것인데.관객들의 맥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천국의 아이들』이란 걸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역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이 뒤따랐다.
1943년 8월,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던 때 니스에서 촬영이 시작됐지만 3일후 제작자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촬영이 중단됐다.
그후 연합군 상륙설이 나돌던 가장 험난한 시기에 게슈타포의 검문과 통행금지,스태프와 일손 부족,세트의 재건립등을 거쳐야했고 제작자가 바뀌면서 제작비마저 부족했다.
그러나 이같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작품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바로 독일군에 대한 프랑스 문화인들의 저항정신이었다.감독과 스태프들은 프랑스의 독특한 영상문화를 창작함으로써 프랑스인들에게자부심을 불어 넣어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나운규(羅雲奎)의 『아리랑』과 비슷한 상황에서만들어졌다는 점이 더욱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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