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 휘저었던 왕자루이 갔지만…

중앙일보

입력

여야 대선 주자들을 잇따라 만나 탐색전을 벌이고 27일 중국으로 돌아간 왕자루이(王家瑞)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서울 행보 막후에선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가 뛰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28일“외교부 초청 형식으로 방한했기 때문에 정부 요인 위주로 면담 일정을 짰으나 한 달 전 중국측에서 대선 후보들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의향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정치권 인사 면담 일정까지 정부가 짜줄 수는 없다는 점을 알려주자 주한 중국대사관 측에서 직접 정치권과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닝 대사는 능통한 한국어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폭넓은 인맥을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닝 대사는 1977년 이후 두 차례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등 12년 가까이 남북한 관련 업무를 담당한 한반도 전문가다.

외교부 관계자는 “닝 대사가 워낙 억세스(대인관계)가 좋아 대선 후보 진영 인사들과 쌓은 친분을 바탕으로 이번 면담 일정을 성사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은 한국을 떠나면서 방한 일정에 만족감을 표하면서 스스로 성과를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정당과의 교류를 담당하는 대외연락부장을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만난 점은 외교 관행상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폐쇄적인 중국 정치권 문화와 비교할 때 특사 자격도 아닌 실무자급 인사에게 지나친 호의였다는 점에서 외교적 상호주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대선 주자들이 대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홍보하고자 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외교상 관례를 지켜 국가적 품위를 배려하는 처신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