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 남성의 ‘검도 예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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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17면

검도는 단지 검만이 아닌 나의 마음을 다스리라 가르친다.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려야 할 중년에 적당한 운동이다. 모델=오병철 4단(마포 제심관 관장) [신인섭 기자]

7년 전 검도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40대 초반이던 당시, 나이가 더 들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을까 찾아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헬스클럽을 주 2~3회 다니고 있었는데, 러닝머신을 무작정 달리는 데 약간 싫증이 난 참이었다.

맘껏 소리치며 스트레스를 벤다

인터넷도 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압축된 것이 바로 골프와 검도였다. 골프에는 별 흥미가 없었던 터라 검도를 택했다. 집 근처 도장을 찾아가 등록하고 매일 새벽반(6~7시)을 나가기 시작했다. 저녁 약속이나 술자리가 잦은 직업 특성상 오후나 밤시간은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새벽운동을 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이걸 지속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나도 초단(2002년)을 따기까지는 개근상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함께 나오는 새벽반 멤버는 인원이 들쭉날쭉이었다. 그나마 나보다 나이 많은 분이나 엄마의 채근을 받는 중학생들의 출석률이 높은 편이었다. 50대 초반의 고참 P씨는 경기도 일산에서 사업을 하는 분인데, 이 분은 거의 운동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의사가 내장이나 신경 계통이 두루 안 좋다며 ‘종합병원’이라고 부를 정도였는데 검도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건강 상태와 컨디션이 놀랄 만큼 좋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곳은 대한검도회(www.kumdo.org) 소속 공인도장이다. 검도도 여러 유파가 있지만, 대한검도회가 가장 일반적이고 정통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입문 초기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죽도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맨손을 위·아래로 휘두르고 발걸음 연습도 한다. 그 다음 죽도를 받더라도 3개월가량은 ‘지루한’ 머리·손목·허리치기를 반복한다. 맘 같아서는 상대와 겨루기(대련)를 하며 내 날카로운 칼맛을 보이고 싶은데. 그러나 더 수련을 해보면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기본기가 허술한 탓에 더 이상 실력 향상이 안 되는 유단자도 허다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검도에 열중하면 누구나 손이나 발에 트러블이 생긴다. 죽도를 잡고 계속 휘두르니까 특히 왼손(오른손은 보조수단에 불과하다)에 못이 박히게 된다. 박힌 못은 몇 차례 까지는 과정을 거쳐 부드러운 굳은살로 정착한다. 발을 구르기 때문에 발바닥에 근저막염이 생기거나 종아리의 가자미 근육을 다칠 수도 있다. 나는 가자미 근육을 다쳐 한동안 한의원 신세를 졌다.

왜 검도인가. 검도는 매우 격렬한 운동이다. 많은 땀과 폐활량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정도라면 헬스나 자전거 타기와 별다를 게 없을 것이다. 나는 검도가 현재는 안전한 스포츠이지만, 과거에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무도, 까놓고 말해 ‘살인기술’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사실 현대의 많은 스포츠가 고대의 전투 또는 사냥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양궁이 그렇고 각종 던지기 종목이 그렇다. 무도 종목은 말할 것도 없다. 도장의 선배 유단자한테 머리치기(죽도로 상대의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기술. 큰 머리치기와 작은 머리치기가 있다)를 할 때 왜 도끼질하듯 내려 찍지 않고 머리의 한 타점만 정확히 가격한 뒤 스쳐 지나가는지 설명을 들었다. “고대에는 상대의 머리뼈에 내 칼이 박힐 경우 상대가 순간적으로 휘두른 칼에 나도 같이 죽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다소 섬뜩하지만, 죽느냐 사느냐를 겨루던 고대 무사들을 상상하며 대련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또 하나는 마음자세를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검도 심사에 합격해 발급받은 초단 단증을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꺼내 보인 적이 있다. 한 선배의 말. “어디 가도 그런 거 아예 보여주지 마라. 더 맞는다.” 사실 1년 이상 수련하면,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 손에 긴 우산이 쥐어 있을 경우 “누구든 한 번 나와봐라” 하는 우쭐하는 마음이 생긴다. 바로 그런 마음이 검도에서는 금기다.

검도 용어 중에 ‘사계(四戒)’라는 것이 있다. 네 가지 경계할 마음이다. 경(驚·놀라는 것), 구(懼·두려워하는 것), 의(疑·의심 품는 것), 혹(惑·혼란스러워하는 것)이다. 대련 중에 상대가 기합을 크게 넣으면 초심자는 나도 모르게 놀라고 겁이 난다. 상대가 기술을 걸면 진짜 기술인지 속임수인지 판단이 안 서 우물쭈물하게 된다.

내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뛰어들어 머리치기를 할 때인데도 내 기술에 대한 의심과 혼란 때문에 저어하고, 결국 격자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용어 중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존심(存心)’이다. 어느 순간에도 방심하지 않는 마음자세를 말한다. 공격하기 전은 물론 공격이 성공한 뒤에도 존심을 발휘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기검체(氣劍體) 일치’라는 말도 있다. 내 의지와 손에 든 검과 몸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검도는 운동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 항상 좌선을 한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힌다. 운동 자체는 매우 격렬하고 호승심이 작동한다. 때로 고단자가 내 죽도를 휘감아 멀리 던져버릴 때는 그야말로 ‘개처럼 달려가 물어오는’ 수모도 겪어야 한다. 중·고교생 유단자에게 두들겨 맞는 것쯤은 보통이다. 그런데도 검도는 재미있다. 그동안 검도 수련으로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른 사람을 여럿 보았다. 나이 들면 나이 든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새벽 공기 속에 두 손으로 죽도를 감아쥐고 상대를 노려볼 때, 그리고 운동 후 땀 범벅이 된 몸을 차가운 샤워기 물살에 내맡길 때 행복감을 느낀다.

직장인들께는, 다른 건 다 제쳐놓고 딱 한 가지 장점만 말하겠다. 바로 소리를 마음껏 지른다는 점이다. 검도장에서는 우렁찬 기합 소리가 필수 의무다. 요즘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어디 마음껏 소리칠 장소라도 있는가. 그것만으로도 하루분 스트레스는 처리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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