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새 경제팀에 기대해도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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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용맹한 장수를 구하면 무엇하나, 군주의 신임이 없으면 졸장이 되고 마는 것을. 천리마를 얻으면 무엇하나, 장수가 달리는 곳이 승첩을 올리기 어려운 지형지세라면.

엊그제 개각 발표를 듣고 느낀 소감의 일단이다. 한국 경제의 표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길게 잡으면 10여년 이상 세계 경제 흐름을 제대로 읽고 한국 경제호(號)를 바르게 조타(操舵)해야 할 선장이 낮잠을 자거나 다른 일에 몰두해 왔다. 지금도 읽어야 할 해도(海圖)가 아니라 뭍의 로드 맵을 읽고 경제보다 정치에 관심을 몰입하고 있다. 외형상 정부 조직이 있으나 내실에 있어서는 정규 조직 밖 비선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형세라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구중궁궐 속 군주가 내관들을 끼고 대신들의 임명권을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내관들이 가타부타하는 데 따라 대신들이 제 구실을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가령 장수가 졸장이더라도 위에서 신임하고 믿어주면 그도 용장으로 둔갑할 수 있으나, 내관들 말을 무겁게 듣고 신임이 가벼우면 용장이 따로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이번 개각에 거는 기대는 대통령 신임의 무게 중심이 옮겨지는가의 여부에 있다.

신임 이헌재 부총리는 오랜 관료 경력을 통해 그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모두 잘 표출된 인물이다. 젊은 관료 시절에는 관치 위세를 떨친 흔적이 있었으나 환란 이후 무너지는 국민경제를 추스르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전공을 세운 인물로 인정된 사람이다. 그가 금번 입각하지 않았다면 좋게 기록될 이름을 도박에 걸고 나섰다. 그의 책임이 막중하다. 그러나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무엇을 하겠나. 팀이 좋아야 한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도 인수위 후 학교로 돌아간 양식 있는 교수, 편향되지 않은 노동경제학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없이는 한국 경제는 일보도 전진할 수 없음에 비추어 그의 책무는 최근 어렵사리 맺어진 노사협약(임금인상 자제, 감원 억제 등)을 제대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기본 현안이 무엇인가. 그것은 신임 부총리가 말했듯이 '일자리 창출'이고, 그것도 민간기업 부문이 투자 부문을 살려 설비투자를 늘리는 방향에서 이뤄지는 것이 정석이다.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유동성(돈)이 풍부하다. 그런데도 설비투자 확충을 꺼리고 있다. 왜 그럴까. 대통령은 그 까닭을 모르겠다고 한다.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압축한다. 현 정부 핵심은 기업 마인드를 읽을 줄도 모르고 제대로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장래를 내다보고 자기 돈을 투자하는 기업은 미래의 불확실 부담을 안고 있다. 노조가, 정치인이, 정부 관료가 파업과 비자금과 규제로 기업 부담을 늘리고 있는 형국이다. 제 돈 떼일 걸 뻔히 알고도 투자할 기업이 있겠는가.

아울러 한반도 안보 상황이 나쁘다. 한.미 공조 체제가 흐트러지고 국제 경제협력의 네트워크 구축이 세계 꼴찌로 내려앉고 있다. 총선까지 정치 현안에 경제가 밀릴 것이고, 총선 결과 여대가 되든 여소가 되든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이 같은 불확실 상황을 풀어주고 믿고 맡겨야 장관들이 일할 수 있다. 신임 부총리는 제 구실 못하는 국회를 설득해 자유무역협정 등 경제 살리기에 동참시키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첨부할 한 가지 사항은 1997년 환란 이후 숨죽였던 관치 경제 목소리가 근래 다시 음모를 높이고 있다. 올 봄에도 자리만 생기면 전.현직 관료들의 낙하산 인사가 있을 모양이다. 위기 때 금융기관이 각기 제 살길만을 도모한다고 나무라는 발언이 신임 부총리 입에서 나왔다는 보도가 께름칙하다. 금융회사의 건전성보다 관치에 협조를 강조하는 듯한 발언이 마음에 걸린다. 환란 전 병을 도지게 하지 말라.

어차피 올해 경제성장 실적은 지난해 바닥에서 반등할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부 행태로 미루어 성장은 있으되 고용은 부진하고 장기 성장 잠재력은 계속 잠식되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중국 등 경쟁국의 맹추격 등 장기 과제는 인기영합주의에 밀려 후일로 미뤄질 듯싶다. 앞으로 또 얼마나 자주 장관들이 입각.퇴진하는 회전문이 돌아가야 하는가. 나라 경제 걱정 때문에 나선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