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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산책] 그녀는 아이스크림에 무너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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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디예 수크에서 꼭 맛봐야 할 아몬드로 토핑한 벡다시 아이스크림. 맛도 맛이지만 아이스크림을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 풍경’ 보기에 딱이다.

오래된 도시는 시간을 품고 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가 그렇다. 이슬람 최초의 왕조인 우마이야왕조 수도로 출발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40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헬레니즘, 비잔틴, 이슬람, 프랑스 등 수많은 문명의 세례를 듬뿍 받은 ‘문명의 보물창고’. 그곳이 바로 다마스쿠스다.

 그중에서도 시간의 향기가 가장 진한 곳이 아랍 최대의 지붕 덮인 시장, 하미디예 수크다.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물건들부터 히잡 쓴 여인네들이 사랑하는 달콤한 아이스크림까지, 하미디예 수크에는 다마스쿠스의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녹아 있다.

글·사진=여행작가 채지형

 긴 터널 속에 보물이 잔뜩

 시리아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시리아는 한국보다 북한과 관계가 더 친밀하다. 일단 비자를 받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터키의 게스트하우스 방명록에는 시리아 비자를 받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렸다는 둥, 뒷돈을 줘야 한다는 둥 비자와 관련된 험난한 스토리가 가득 적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국경에서 만난 고압적인 군인들은 여간해서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하릴없이 5시간 동안 입국 심사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린 후에야 겨우 시리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미디예 수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180도 달랐다. 살가운 웃음과 친절한 눈빛, 잔뜩 얼어붙었던 가슴을 녹여주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 꼭 허를 찔린 듯한 기분이었다.

 차 인심은 후했다. 이슬람 청년들이 하미디예 수크 입구에 삼삼오오 모여 아랍식 커피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이다보니 대신 차와 커피 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듯했다. 한 할아버지가 인심 좋게 커피를 권했다. 잔은 소주잔만큼 작았지만 맛은 깔끔하고 달콤했다. 고맙다고 잔을 돌려주니 금세 다시 한 잔 따라준다. 달콤쌉싸래한 커피 맛도 좋았지만, 커피를 건네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고마워 한참 동안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보물 상자 같은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치장을 한 물장수가 눈에 들어왔다. 시리아는 건조한 지역이라 옛날부터 물이 귀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예외 없이 물을 나눠주는 이가 생겨났단다. 지금은 돈을 받고 물을 팔고 있지만 예전엔 돈 대신 감사의 표시로 빵을 주곤 했다고. 여행자의 눈에는 그런 역사가 그들의 현란한 모자와 몸짓만큼이나 신기하게 다가왔다.

 하미디예 수크는 높은 천장에 긴 터널처럼 생긴 통로 안에 자리하고 있다. 천장 사이사이로 간간이 빛이 들어오고, 양쪽에는 수많은 가게가 줄지어 있다. 하맘(이슬람식 사우나)에서 쓸 것 같은 타월, 화려하고 부드러운 다마스쿠스 비단,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 수크에서 봤던 올리브 미용 비누…. 빵과 양고기를 파는 식료품점과 향신료 가게에서 풍겨오는 강렬한 향이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도대체 뭐하는 곳이야?

 수많은 물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벨리 댄서들이나 입을 것 같은 과감한 속옷들이었다. 얇디얇은 감에 ‘야릇한’ 디자인의 옷들이 넘쳐났다. 과연 눈만 빠끔 내놓고 사는 이슬람 여인들이 저런 옷을 소화할 수 있을까? ‘야시시’하기 그지없는 속옷들은 시장을 바삐 걸어가는 다소곳한 이슬람 여인들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문득 그들의 아라비안나이트가 궁금해졌다.

 속옷가게 앞에서 한참 어슬렁거리는데, 건너편 가게 앞에 웅성웅성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호기심에 가보니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까만 부이부이(옷)와 히잡(두건)으로 온몸을 감고 새하얀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먹고 있는 여인네들. 아이스크림 가게는 앉을 자리 없이 꽉 차 있었고 포장을 해가려는 이들로 입구까지 막혀 있었다. 얌전해 보이던 이슬람 여인네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서로 밀고 당기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차례가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가는 이들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아이스크림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었다. 모든 일이 가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슬람 국가다웠다. 가게 한복판에 떡 버티고 있는 군복 입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사진이 생뚱맞기는 했지만. 실제 먹어본 아이스크림 맛은 끝내줬다. 점잖은 이슬람 여인네들이 흥분할 만했다.

 하미디예 수크의 긴 터널 밖으로 나오면 중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우마이야 모스크가 나온다. 엄청난 규모와 세밀한 장식이 여행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모스크를 찾는 이들의 신실한 표정 또한 마음의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장 옆에 있어서일까, 우마이야 모스크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즐기는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었다. 신앙의 장소와 삶의 공간이 하나가 되는 이슬람의 ‘성속합일’ 정신이 아마도 이런 것일 게다.    

가는 길=시리아는 서쪽으로 레바논, 남서쪽으로 이스라엘, 남쪽으로 요르단, 동쪽으로 이라크, 북쪽으로는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시리아로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비행기로 터키 이스탄불까지 간 뒤, 국경인 안타키아를 거쳐 육로로 넘어가는 것.

쇼핑 노하우

1. 뭐든 물어보자. 유럽 벼룩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다.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든, 물건을 사려고 하는 이들에게든 ‘뭐가 더 좋아요?’ ‘이건 어때요?’ 질문을 건네 보라. 아마 5분 후에는 그 사람이 옆에 앉아서 함께 물건을 팔고 있을 것이다.

2.골동품에 대해 공부하고 가자. 앤틱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어렵지 않게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3.아이스크림을 꼭 맛보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쫓아가다 보면 벡다시 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날 수 있다.

4. 기념품으로는 이슬람 문자로 이름을 새긴 열쇠고리, 사과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나르길레(물담배) 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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