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토이 보이(Toy Boy)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결혼은 이성 간의 생물학적 욕망에 따른 결합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결혼은 남녀 간의 권력관계를 반영해온 사회적 틀이었다.

노골적인 약육강식의 시대에 여자는 약탈의 대상이었다. 전쟁을 통해 다른 집단의 여자를 빼앗아와 자기 종족을 늘리는 수단이 된 약탈혼(掠奪婚)이었다. 보쌈이 그 흔적이다. 약탈혼은 결과적으로 근친상간의 시대를 넘어 자기 집단 바깥의 여자와 결혼하는 외혼(外婚)풍습을 낳았다고 한다.

그러다 평상시엔 여자를 교환하거나 귀한 물건을 주고 사야 했다. 매매혼(賣買婚)이다. 부여에선 남자가 여자 집안의 양해를 얻어 한밤중에 신부감을 훔쳐가고 나중에 소나 말을 대신 보냈다. 약탈혼의 형식을 취한 매매혼이다. 고구려의 데릴사위 역시 신부의 몸값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지불하던 매매혼이다.

반대로 여자가 결혼하면서 신랑집에 가지고 가야 하는 지참금 제도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열등함에 따른 보상금의 성격이다. 특히 신분이 낮은 여자가 높은 남자 집안에 시집가는 앙혼(仰婚)의 경우 지참금이 많아진다. 지참금이 적다며 신부를 살해하는 악습이 남아 있는 인도에서도 여성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남부 쌀농사 지역에서는 지참금이 상대적으로 적다.

최근 영국에서 결혼풍속도의 새 흐름을 상징하는 말은 '토이 보이(Toy Boy)'다. 발음이 비슷한 장난감(Toy)과 소년(Boy)이란 단어를 합쳐 연하남(年下男)을 뜻한다. 연상녀 입장에서 볼 때 '귀엽고 말 잘 듣는 남편'을 말한다. 지난 연말 영국의 인기그룹 콜드플레이의 싱어 크리스 마틴(26)이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31)의 토이 보이가 됐고, 이에 앞서 가수 마돈나는 열살 아래인 영국 영화감독 가이 리치를 잡았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도 돈을 벌자 여섯살 아래 신랑을 구했다.

토이 보이는 여성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준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남자를 먹여살릴 수 있는 여자들이 주로 토이 보이를 구한다. 유명 여자 연예인이 흐름을 선도하는 이유다. 최근엔 직장여성들 사이에서도 토이 보이는 자랑거리라고 한다. 11일 중견탤런트 김보연(47)이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하남 전재룡(39)을 새로운 배필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드물지 않은 풍습이 됐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