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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칼럼>一葉片舟 배견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우리나라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 고유의 전통낚시가있다.바로 견지낚시다.
〈사진〉 견지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에 실패가 보급되기 전 아낙네들이 길쌈할 때 쓰던 생활도구로 지금은 퇴화.사멸되고 있는 순수 우리말이다.
아낙네들이 물레를 돌리며 길쌈을 하는 자리에 아이들이 찾아와서 연줄을 달라고 졸랐다.간청에 못이겨 아낙네들은 견지 두서너개를 합해 4각이나 6각 또는 8각의 방패를 만들어 실을 감아줬다.그러면 아이들은 밖에 나가 좋아라고 연을 날 렸다.
아이들만 실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나이가 든 사람들은 아낙네들에게 「자루를 길게 만든 견지」를 가지고 와서 줄을 감아달라고 했다.낚시를 하기 위해서다.아낙네들이 견지에 실을 감아주면 좋아라고 강가에 나가 고기를 낚았다.
이런 연원을 따져볼 때 견지와 방패,그리고 연날리기와 견지낚시는 뿌리를 같이하는 형제들이다.용도는 다르나 맛은 같다.방패의 끝에는 연이 달라붙어 앙탈을 부리고 견지낚싯대의 끝에는 고기가 달라붙어 앙탈을 부린다.
하나는 하늘을 향한 몸짓을 하고,다른 하나는 생명을 향한 몸부림을 친다.인간은 그 연줄과 그 낚싯줄을 당기며 무한한 동경의 희열을 느낀다.
우리 조상들의 일과 넋,그리고 지혜와 용기가 깃들어 있는 한국 고유 강변문화의 하나인 견지낚시의 맥은 불행하게도 자연하천이 인공하천으로 변하고 서구에서 가지각색의 낚시방법과 도구들이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면서 1970년을 전후해 끊어지고 말았다.안타깝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가지 견지낚시 방법 중에서 겨우 맥락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세가지다.이나마 견지낚시 동호인들과 희생적인 헌신자들에 의해서다.하나는 피서철의 백미로 알려진 여울 견지낚시고,다른 하나는 배를 타고 강에 들어가 고기를 낚는 배견지며 ,또 하나는북풍한설에 얼음장을 깨고 고기를 낚는 얼음낚시다.
이 세가지 중에서 배를 타고 강고기를 낚아내는 배견지는 10월이 제격이다.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때로는 전후좌우에 붉게 타오른 만산홍의 단풍을 보며,때로는 천고마비의 푸른 창공에 떠오른 뭉게구름을 보고,때로는 흐르는 강물을 보며 인 생을 음미하노라면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강한 충격과 함께 멍짜가 낚여나온다. 여울견지나 배견지,그리고 얼음견지에 사용하는 견지 낚싯대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적은 낚싯대일 것이다.길이가 70㎝전후 굵기가 2~5㎜에 불과하다.그 작고 하늘거리는 낚싯대에큰 멍짜가 낚일 때의 희열을 누가 안단 말인가.
〈낚시 전문가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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