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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도 겁내는 M&A … 삼성전자·포스코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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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 7월 13일 삼성전자 주가가 인수합병(M&A)설로 급등했다. 지난해 KT&G를 공격했던 미국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삼성전자 공격에 착수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은 예상보다 나빴다. 며칠 뒤 아이칸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삼성전자에 관심없다고 밝혔다.

올 3월 세계 최대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이 포스코를 노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아르셀로-미탈은 M&A로 덩치를 불려 온 기업이다. 며칠 뒤 미탈 고위관계자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포스코 주가는 출렁거렸다. 한국의 간판기업 삼성전자와 포스코도 적대적 M&A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적대적 M&A를 걱정한다. 도요타자동차의 지분 5.54%를 갖고 있는 3대주주 도요타자동직기의 시가총액은 12조원 규모. 이 회사가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요타자동차는 지난해 계열사의 도요타자동직기 지분을 반수 넘게 만들었다. 도요타자동직기가 외국 자본 M&A설에 시달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 M&A 규모는 4조 달러를 넘었다. 300억 달러짜리 초대형 M&A도 이뤄졌다. 시가총액 184조원(약 1993억 달러)의 도요타자동차도 M&A에 대비할 정도다. 시가총액 78조원(약 848억 달러)인 삼성전자나 50조원(약 547억 달러)인 포스코가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더구나 이들 회사의 외국인 지분은 이미 50% 수준이다.

더구나 한국의 경영권 보호제도가 주요 국가 중 가장 미흡한 상태다. 이 때문에 재계는 계속 경영권 보호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 기업의 유일한 방어 수단은 돈=일본은 2005년 회사법을 고쳤다. 상장기업이 포이즌 필(독약 조항)과 복수의결권 주식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적대적 M&A 방어책을 정관에 도입한 일본 기업은 350여 개로 전체 상장기업의 10%에 이른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이런 제도를 진작부터 갖고 있다.

<표 참조>

한국엔 이런 방어 수단이 없다. 한국 기업의 경영권 보호 방법은 대주주 지분과 우호 지분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많이 사모아 위기 때 활용하는 것뿐이다. 상장기업의 자사주 규모가 42조원에 이르는 것도 상당 부분 이런 이유에서다. 포스코의 최대주주가 일본의 신닛테쓰(新日鐵.5% 보유)인 것도 경영권 방어용으로 서로 우호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도 최소한 외국 수준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최근 경제전문가 20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1%가 경영권 보호수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외국 기업 인수 때 부닥치는 장벽과 같은 정도의 울타리는 한국 기업에도 보장돼야 역차별이 해소된다는 주장이다. 기업들은 특히 신주의 제3자 배정, 포이즌 필 등의 도입을 희망하고 있다(최근 전경련 조사).

◆엑손-플로리오(Exon-Florio) 법=2005년 초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의 3위 석유회사 유노칼을 인수하려 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가 나서서 이 거래를 막았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외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를 막을 수 있도록 한 엑손-플로리오 법을 적용한 것이다. 같은 해 7월 미국 펩시가 에비앙 생수를 만드는 프랑스 다농을 인수하려 했다. 프랑스 정부는 즉각 다농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결국 펩시는 다농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한국판 엑손-플로리오 법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이나 시행령에 국가안보나 국가기밀과 관련된 회사를 외국인이 인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과 달리 이 제도의 적용대상이 제한된 범위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삼성전자 같은 전자회사는 적용대상이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5% 룰 바뀌어야=외환위기 이전엔 어느 회사의 지분을 25% 이상 산 투자자는 지분이 50%+1주가 될 때까지 의무적으로 공개 매수하도록 돼있었다. 적대적 M&A를 하려면 50% 이상 주식을 사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제도는 외환위기 이후 모두 사라지고 5% 룰(대량 주식보유 보고 제도)만 남았다. 어느 회사의 주식을 5% 이상 샀을 땐 이를 공시해야 하는 게 5% 룰이다.

서울대 김화진(법학) 교수는 5% 룰을 3% 룰로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감사 선임 때 대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도가 3%라는 점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5% 룰을 적용하지만 영국은 3% 룰, 이탈리아는 2% 룰을 채택하고 있다.

김 교수는 또 적대적 M&A에 나서는 펀드의 경우 펀드자금의 실질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궁극적인 배후자의 신원을 공시하게 한다. 이런 제도는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뿐 아니라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경영권은 도전받는 것" 반론도=고려대 장하성(경영학) 교수는 "대기업의 투자 상황을 보면 총수의 의결권 보호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며 경영권 보호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장 교수는 9월 한 강연에서 "경영권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전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또 "삼성전자 M&A는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삼성그룹 계열사 출자구조는 63차 방정식만큼이나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박상용(경영학) 교수도 "한국 기업은 적대적 M&A에 노출돼야 한다"며 "대주주를 적대적 M&A로부터 보호해 주면 일반 주주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 김 교수는 "적대적 M&A의 위험을 실제보다 과도하게 느껴 자사주 매입 등에 지나친 돈을 쓰는 기업이 많다"며 "경영권 보호장치를 어느 정도 마련해 국가적 차원에서 자원이 제대로 배분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포이즌 필=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싼 값으로 신주를 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이렇게 되면 기존 주주의 주식 물량이 늘어나 적대적 M&A가 어려워진다. 싼 값에 신주를 배정해 회사 재무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독약 증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인정되는 경영권 방어 방법.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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