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의 남자 읽기] 당돌한 아내가 부담되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안정된 직장에서 18년간 일해온 C씨(42). 대학 졸업반 때 만나 3년간 열애 끝에 결혼한 아내와 16년째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예쁘고 애교 많은 아내는 마흔이 넘은 지금도 문득문득 사랑스러움을 느낄 정도의 여성미를 유지하고 있다. C씨 연배엔 중성(中性)같은 '마누라'이야기를 술자리 안줏거리로 올리는 친구들이 많은 터라 그는 매력 있는 아내가 자랑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아내의 직선적인 성격만큼은 불만이다.

아내는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구김없이 자란 때문인지, 별반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솔직한 성격이다. 매사 싫고 좋은 것이 분명하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부모님 어려워하면서 성장한 C씨는 구김살 없는 아내의 그런 스타일에 마음이 끌렸던 게 사실이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은 아내의 그런 철부지(?) 태도가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중년이 가까워 오면서 아내의 직선적 성격은 C씨를 화나게 했고, 특히 집안 어른이나 남들 앞에서 당돌함으로 비칠 땐 민망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때마다 아내에게 싫은 말을 했지만 '내가 틀린 말 했느냐, 사실을 못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옹졸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일 뿐이다.

아내의 성격을 고칠 순 없을까.

먼저 C씨는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은 고장난 TV를 고치듯, 쉽게 고치거나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점을 알고 난 C씨에겐 두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직선적인 성격이 단점 뿐 아니라 장점도 있으므로 아내의 좋은 점을 보면서 단점은 앞으로도 사랑과 이해로 감싸고 눈감아주면서 지내는 거다. 사실 이 세상에 결점 없는 인간은 없지 않은가. 또 아내도 C씨 성격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만일 아내의 성격을 정 참을 수 없다 싶을 땐 아내에게 '당신의 직선적 성격으로 인해 당신이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지 않느냐'는 내용을 아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부드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의 성격으로 인해 아내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를 본다는 점을 느끼게 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직선적인 말과 행동으로 아내를 당황하게 만들 때 어떤 기분일지에 대해서도 물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말을 한다 해도 아내가 자신의 문제점을 곧바로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고 밉게 봐서 그런 말을 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성격 문제로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심지어 배우자에게서 무시.외도.별거.이혼 등의 심각한 어려움까지 겪은 사람들도 본인의 문제점을 깨닫기보다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 동료나 배우자를 원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내를 설득할 때까지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다행히 아내가 자신의 성격 문제를 인정해도 아내의 성격을 완전히 고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대신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자제하는 법을 조언해야 한다. 아내의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까진 몇 달, 몇 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점만 빼면 여전히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내 아내인 것을.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