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표시制 구멍 소비자만 골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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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6일 오후 서울 경동시장.장을 보러나온 주부들로 북적대는 골목길 맞은편 P상회에서 40대주부와 상인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흰색 돋은 게 수입참깨가 분명하잖아요.』 『농학박사가 와도 구별못하는 국산 참깨와 외국산(産)을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요.』 『아무리 장사라도 너무하잖아요.한사발(6백g짜리)에4천원이면 살 수 있는 중국산을 경기도산이라고 속여 3배도 더붙여서 1만원4천원에 팔면 어떻게해요.』 서울의 대표적 곡물.
채소 소매시장인 경동시장에서는 이같은 소비자와 상인간의 실랑이가 하루평균 10여건씩 벌어진다.
소비자는 수입농산물을 국산으로 속여 팔았으니 환불을 해달라는것이고 상인은 국산이 틀림없다고 돈을 되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값싼 중국산 농산물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파는 상점이 경동시장내에도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팔면 2~4배나 이익을 더 남길 수 있는 매력이 있어 불법인줄 알면서도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는 것이다. 〈표참조〉 원래 수입 농산물은 낱개로 판매할 때는 스티커로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고 용기판매일 때는 잘보이는 용기의 측면에 역시 원산지를 표시해야 한다.그래도 여의치 않을 때는 소비자의 눈에 잘 띌수 있도록 가로 15㎝,세로 10㎝,높이 10 ㎝이상의 푯말을 용기안에 세워야 한다.
그러나 시장내 좌판상인은 차치하더라도 경동시장내서 수입농산물을 취급하는 3백여 점포 가운데 이같은 법규정을 제대로 지키는곳은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7년째 경동시장에서 곡물상을 하고 있는 朴모(38)씨는 『콩이나 팥 무더기에 원산지표시 푯말을 꼽아놓으면 당장 손님이 30%이상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다시 뽑아버린다』고 말했다.소비자들이 경동시장을 찾는 것은 품질이 좋은 국산 농산물을 다른시장보다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인데 중국산으로 원산지를 표시했다가는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일부 상인들은 국립농산물검사소에서 보급한 원산지표시 팻말에다 아예 국산이라고 써 놓고 버젓이 수입품을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심지어 이들 표지판에다 원산지표시는 고사하고 국내산 가격만을 표시해 수입산과 국내산을 식별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에게피해를 더해주고 있다.
방학동에 사는 주부 조인화(趙仁和.30)씨는 『식탁에 오르는농산물은 대부분 재래시장을 이용하는데 원산지 표시제가 제대로 시행이 안돼 소비자들은 결국 값싼 수입품을 비싼 국산품으로 알고 사먹는 꼴이라서 사실상 농산물의 가격이 그만 큼 오른 셈』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국내의 농산물 유통시장에도 일대 혼란이 일고 있다.요즘은 국산품이 되레 수입품으로 의심받아 제값을 다 못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상인들은 호소하고 있다.실제로 경동시장에서는 국산 콩(대두)이 1㎏에 소매가로 3천원은 받아야 하나 주부들이 믿지 않아 상인들은 실제가격보다 1천여원이 싼 1천9백원선에 팔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일부 상인들은 아예 중국산과 국내산을 섞어 이들 두품목의 중간인 평균값에 팔고 있다.소비자나 시장의 상인들 모두 현재와 같이 국산과 외국산을 섞어 팔아야만 하는 농산물유통의 혼란이 내년부터는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고 입 을 모은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 대한 비준안이 올가을 정기국회에서통과되고 내년부터 수입농산물이 본격적으로 밀려들어오면 지금보다도 더 큰 혼란이 몰아닥치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피해는 더욱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金是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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