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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현장] 5. 광주 민심은 어디로 (下)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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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을 두달여 앞두고 호남 민심의 향방을 좌우할 광주를 지난 3일과 4일 둘러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시민들은 정치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싫어했다. 민주당이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여는 등 정치권의 총선전은 이미 시작됐지만 일반 시민들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무심해 보였다. ‘배신론’과 ‘개혁론’을 내세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방 속에 오히려 입도 마음도 꼭꼭 닫힌듯 하다. 과연 총선 열기는 얼어붙은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인가. 선택의 순간, 광주 민심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광주 취재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진정한 ‘개혁’의 실체를 보여주마”: 동구

청와대 수석이니 대통령 특보니 하는 중앙정계의 실세 이름이 거론되는 남구·북구보다 광주 시민들이 정작 흥미있게 지켜보고 있는 지역은 동구다. 초선인 민주당 김경천 의원이 지역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정계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인물인 데다, 지역 활동으로 기반을 탄탄히 다져온 정치 신인들이 대거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에 지역 정서와 ‘바꿔 열풍’을 둘다 만족시키는 것이다.

지난 4일 본지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똑같이 나타났을 만큼 광주시 6개 선거구 중 가장 백중세를 보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열린우리당측의 도전자 면면이 만만치 않다. 노인수 변호사, 양형일 조선대 교수, 이윤정 광주미래연구소 부이사장 등 중앙위원이 세 명이나 한꺼번에 이 지역에 공천을 신청, 중앙당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 공천 경쟁에는 방송기자 출신인 박현 김대중사상 계승발전추진협의회 의장도 가세했다.

열린우리당 광주시지부의 박규환 사무처장은 “오는 14일 시작되는 지역 경선 일정에 따라 광주에서는 동구가 제일 먼저 경선을 치르게 될 것 같다”면서 “참신성과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이들의 치열한 접전이 시민들의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앙위원들의 경우 경선 결과에도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광주·호남 지역으로의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에선 김 의원 외에 구해우 광주평화개혁포럼대표와 김대웅 광주희망21연구소 이사장이 공천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다만 광주고검 검사장 출신의 김대웅 이사장은 ‘2004 총선시민연대’가 10일 발표한 ‘공천반대자 명단’에 끼어 있다.

민노당도 이 지역 공략에 집중할 계획이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이 지역은 노년층이 많은 편”이라면서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에서도 여성 후보들이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참신성과 섬세함을 갖춘 여성후보가 나오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이나 받아묵는 것들은 싹 갈아야지라”

전반적으로 광주의 민심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방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선호하는 성향은 분명 존재했지만 기자가 만난 다수의 시민들은 민주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처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총선 때는 당과 상관없이 새로운 인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난 3일 민주당 집회현장에서 마주친 노인들도 그랬다. 인근 광주공원에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집회 구경을 왔다는 이맹송(67·서구)씨는 “노 대통령이 우리 광주·호남 사람을 배신한 거요. 사실 당 경선 때 노무현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워디 있었소? 그거 호남에서 똘똘 뭉쳐서 대통령 묶어준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송두리째 짓밟고 민주당 씨를 저버린 것이 워찌 분통 터지지 않겄소”라면서 “개혁 헌다구 나갔으문 지대로(제대로) 혀야지…. 그런 사람을 뽑아논 것이 후회스럽구만요”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 때 민주당 후보를 찍겠냐는 질문에는 의외로 즉각 부정했다. “우리가 저그 노란 띠 두르고 다니는 사람 맹키로 정치꾼이라 여그 온 게 아니구먼. 우린 진정으로 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민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지만 총선 때는 똑똑한 사람, 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문 열린당이든 민주당이든 뽑아줄라요”하고 강조했다.

광주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중 하나인 대인시장에서 30년 이상 생선장사를 해왔다는 김금순(64·여)씨도 “규탄대횐가 뭔가 한다고 서울서 민주당 사람들이 왔드만 인자 싸움질은 그만 혔음 쓰겄어. 열린머시기 당인지 하구 맨날 니가 많이 묵었냐 내가 많이 묵었냐, 워디 세살배기 아그들도 아니고 뭐하는 짓거리여”라면서 “그저 돈이나 처묵는 것들은 싹 갈아야 써”하고 말했다.

광주 경실련의 김재석 사무처장은 이와 관련,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간의 경쟁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특정 정당의 지배체제를 없애고 지역 내에 경쟁체제를 만드는 것이 호남지역 정치발전을 위한 제 1과제”라면서 “(민주당을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겼던)과거보다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는 광주 시민들의 높아진 기대 수준에 부응하는 인물이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면서 “열린우리당도 광주·전남의 새로운 정치시대를 맞아 통합력·지도력을 보여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지역 언론 관계자는 “정치 신인들의 경우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도토리 키재기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투명한 공천·경선 과정에서부터 새로운 선거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 점진적인 개혁의 길이 아니겠냐”며 희망을 보였다.

광주=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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