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원유 고도화 설비 공사 현장 가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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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6일 오후 울산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30분쯤 달렸을까. 높이 100m 이상이라는 굴뚝 수십 개와, 지붕에 축구장을 만들 만큼 거대한 원통 모양의 정유 저장고가 빽빽이 들어선 SK에너지 울산공업단지의 위용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0배가 넘는 공단을 가로질러 바닷가 언덕에 이르자 기계음과 트럭이 오가는 소리에 귀가 멍했다. 높이 200m가 넘는 굴뚝 모양의 반응기를 가운데 두고 굵은 은색 파이프를 연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회사가 내년 4월 완공할 고도화 설비(FCC·중질유분해 시설·사진) 공사 현장이었다.

고도화 설비는 원유를 정제하면서 나오는 벙커C유를 고가 제품인 휘발유·경유 등으로 바꾸는 장치다. 부가가치가 높아 정유업계에선 ‘지상 유전’이라 부른다.

손병헌 뉴FCC시설2팀장은 “원유정제 때 생기는 벙커C유 분량이 전체 원유의 40%가량인데 이를 그대로 팔면 원가도 못 건진다”고 설명했다. “고도화 설비를 활용해 한 번 더 경질유를 만들어 팔 경우 배럴당 30달러 정도는 더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유업계가 앞다퉈 고도화 설비를 늘리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달 전남 여수에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제2고도화시설을 완성했다. 고도화 비율이 22.3%로 높아졌다. 국내에선 에쓰오일이 25.5%로 고도화 비율이 가장 높다. 강신기 상무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경질유 제품 소비가 늘고 가격이 뛰면서 석유사업 부문에서 상반기에 국내 정유업계 최고인 7%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정유회사인 SK에너지의 고도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공사가 끝나면 19.3%로 뛴다. 경질유 생산량이 하루 10만 배럴에서 16만 배럴로 많아져 국내 최대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손 팀장은 “공사비만 1조9600억원으로, 같은 규모의 원유 정제시설 투자비의 열 배 정도가 들지만 워낙 수익성이 좋아 5년 안에 투자비를 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새 설비에서 생산하는 고부가가치 석유제품 대부분을 수출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정유업의 고도화 비율은 평균 22.1%로 미국(76.3%)·독일(53.7%)·일본(39.8%)보다 훨씬 낮다. 

울산=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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