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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20.내가 마지막 본 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영화나 소설을 볼 때 그 작품에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얼마만큼 반영되었는지에 따라 우리들은 그만큼 더 흥미를 느끼게 마련인데,1954년 리처드 브룩스 감독이 발표한 『내가 마지막 본파리』(The Last Time I Saw Pa ris)가 바로 그런 영화다.이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의 원작자 프랜시스스콧 키 피츠제럴드가 쓴 것으로 1920년대 파리에서 살았던 피츠제럴드 자신을 포함해 어니스트 헤밍웨이.어윈 쇼.존 도스 패소스 같은 보헤미안과 데카당 작가 들,이른바 「국적 상실자」(expatriates)들의 생활상을 반영한 일종의 미국판 『타향살이』얘기다.
특히 흥미있는 것은 영화속 여주인공(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델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계속 실패만 거듭하는 소설가인 남자주인공(밴 존슨)은 피츠제럴드 자신이겠지만 여주인공은 과연 결혼생활에 문제가 많았던 그의 아내 젤다였을까.헤 밍웨이가 쓴 『파리의 축제』(The Movable Feast)를 보면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는 술과 파티를 즐기고 너무 놀기만 좋아해 천재였던 피츠제럴드가 좋은 작품을 많이 못썼다고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누구를 모델로 했든 이 영화의 진수는 여주인공의 성격묘사다.「빨래와 요리는 못해도 택시는 잘 잡는다」고 자처하는 여자,글쓰는 남편의 옆에 앉아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라」며 놀자고 졸라대는 아내다.또 히로시마의 핵폭탄 투하 얘기를 해주기 전에 우선 키스부터 해달라는 여자,딸을 술집 다락방에 재워놓고 남편이 아닌 남자(로저 무어)와 술을 마시는 엄마이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즐기고 싶다」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통 만족스럽지 않아 무엇인가에쫓기는 초조한 기분을 느끼다 결국은 표피적 행복의 추구에 회의를 느끼고 깊이가 없는 파리의 삶에 대한 슬픔과 권태 에 빠져「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여자.이 강렬한 주인공 역을 맡기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얼굴만 예뻤지 너무 개성이 없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느끼게 했던 영화였다.
피츠제럴드는 훗날 할리우드의 칼럼니스트였던 실라 그레이엄이란여자와 사랑하게 되는데,그 연애사건을 다룬 영화도 따로 있다.
헨리 킹 감독의 1959년 영화 『이수』(離愁.Beloved Infidel)에서 그레고리 펙이 피츠제럴드 역 을,데버러 커가 실라 그레이엄 역을 맡았는데,남자는 모두 늑대라니까 그레고리 펙이 늑대우는 소리를 내던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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