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기다려보기는 처음이야.』 써니엄마가 소파에 푹 묻혀서 혼잣말처럼 말했다.써니엄마는 팔십쯤 된 할머니가 말하듯이 체념이 밴 말투로 그랬다.실례지만 몇살이세요,라고나는 물어보고 싶었다.화장기 없는 얼굴의 써니엄마는 아주 깨끗하고 젊어보였다.스물아홉이라고 해 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써니를 스물 둘에 낳았다니까,그리고 써니는열일곱이니까…써니엄마의 진짜 나이는 서른아홉이 맞을 거였다.
『써니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그래도 크리스마스 카드 한장쯤은 보내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써니엄마가 말하고는 눈에 물기같은 것이 어리는 게 민망해선지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댕겼다. 『일하러 안나가세요…?』 내가 물었다.일하러 나가야 되는 시간이 아니냐고 물은 거였다.
써니엄마가 너를 한번 보구 싶대.이번주에 아무날이나 학교 끝나고 집에 들러주면 좋겠다구 그러더라구.양아가 내게 전화를 걸어서 말했을 때부터 궁금하던 거였다.
『응 가게는 팔았어.그 장사를 왜 계속해야 되는지 모르겠더라구.』 『그럼 그동안에는…잘 지내셨구요…?』 써니엄마는 다시 냉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우아하게 담배연기를 한번 길게 내뿜고는 말했다.
『그동안에 말이지,사실은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겪었어.』 써니엄마가 눈썹을 이마 위로 치켜 올리면서 담배를 비벼껐다.써니엄마는 재떨이를 멍하니 응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전국적으로 여기저기에 불려다니며 내가 확인한 시체만 해도 열 개가 넘을 꺼야.흉측한 시체들을 들여다보는게 어려운 거 보다도 말이지,거기에 가고 오는 동안에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견뎌야 하는 게 더 어렵더라구.달수가 이해해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나중에는 아예 그 시체의 주인공이 차라리 선희였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구.』 내가 써니엄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써니엄마가 그게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들어 허공을 저었다.
『내 말은…선희를 생각하는 게 너무나 힘들다는 이야기야.혹시나 선희가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들을 상상하는 게견딜 수 없다는 거야.달수는 모를 수도 있다니까.』 『써니는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는지도 몰라요.전요…어쩐지 그런 예감이 들거든요.』 『오늘 내가 달수를 보자구 그런 건 말이지,방학을하면 한 일주일만 날 도와줄 수 있나 하고 물어보고 싶었거든.
선희가 있을만한 곳을 몇군데 알아뒀어.달수가 같이 가준다면 내겐 큰 힘이 돼줄텐데 말이야.물론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다면 말이야.』 나는 망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방학하면 전 괜찮아요.써니를 찾을 수만 있다면…전 사실….
』 써니엄마가 오랜만에 방긋 웃었다.나는 잘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로 찾아가는 거지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