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이너리티의 소리] 혹시 우리집서도 아동학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아동양육에 대한 과중한 부담은 여성들에게 출산은 물론 결혼까지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과 고령사회로의 급속한 진입에 대한 대책을 수립한 바 있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부양을 책임져야 하는 미래의 역군을 많이 생산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태어난 아동들을 정상적이고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기.유괴.학대와 방임,동반자살이라는 미명 아래 부모에 의해 저질러지는 자녀살해가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도 계모에 의해 한 어린이가 목숨까지 잃었다.

2000년 1월 아동복지법이 개정돼 아동학대와 방임에 국가가 개입하는 아동보호체계가 만들어졌다. 현재 전국 시.도에 19개소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인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설치돼 있고, 24시간 아동학대를 신고접수하는 아동구원의 전화(국번 없이 1391)도 있다. 지난 3년간 1391에 접수된 1만3천2백30건 중에서 7천4백75건이 아동학대와 방임 사례로 판정받았다. 이 중 40% 이상이 일시 또는 장기격리, 친인척 보호 또는 가정위탁보호를 받았다. 이처럼 보호체계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학대와 방임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 사회의 아동관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권리의 주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예방 차원의 홍보는 물론 부모들에 대한 자녀양육법,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부모준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셋째, 신고를 활성화해야 한다. 현재 발견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동복지법에 규정된 신고의무자들(교사.보건의료인.시설종사자 및 관련 공무원)의 신고조차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미신고 때 처벌조항을 도입하는 것에 앞서 신고의무자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넷째, 예산을 과감히 배정해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하는 조기발견 시스템과 아동양육 기능이 허약해진 가정에 대한 우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16개 시.도에 19개소의 아동학대예방센터와 센터 당 8명의 상담원으로는 증가하는 아동학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다. 센터를 증설해 지역사회 밀착형 아동보호체계를 확립하고 전문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전문인력들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피해아동들의 후유증 치료와 재발방지를 위한 부모교육 전담 상담기관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부모의 갈등을 목격하고, 부모의 폭력과 무관심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보듬어 안고 치유해 주지 않으면 청소년기에 비행.가출로 이어지며 이들이 다시 사회범죄에 발을 담그는 악순환이 계속돼 사회부담만 늘어갈 것이다. 아동학대 신고의 75% 이상이 11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며, 최근 가출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가출아동의 70% 이상이 가정 내에서 폭력을 경험했다는 통계는 아동학대와 청소년문제의 연관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섯째, 학대하는 부모에 대한 의무적인 상담수강 명령과 필요시에는 언제든지 신속히 피해아동을 그 부모로부터 격리 보호할 수 있도록 법원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2002년 5월 유엔에서 개최된 아동특별총회 석상에서 세계 어린이 대표들은 "어린이는 미래인 동시에 현재이고, 어린이를 위한 예산배정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라며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호소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한다.

이호균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