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賞받은 켄싱턴호텔 김영애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단순 노동으로만 취급되던 객실 정리작업(메이드)이 전문 지식으로 인정받게 돼 기쁩니다. 요즘엔 어떤 일을 하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강원도 속초시 켄싱턴 호텔에서 객실 정리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영애(48.金榮愛)씨. 투숙객들이 이용하고 난 객실을 정리하고 복도.계단 등을 청소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얼핏보면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작업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효율이 확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줬다.

金씨가 지난해 8월 처음 개발한 '객실 정비 45단계'라는 업무 지침은 자신뿐 아니라 함께 근무하는 동료 10여명의 업무 효율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균 30분 정도 걸리는 객실 한곳의 정리를 24분으로 단축했기 때문이다. 1백여가지에 달하는 객실 정리 과정을 45단계로 줄이고 이를 다시 네가지 큰 묶음으로 분류했다. 옷장.침대.테이블.화장대.욕실.침대 등으로 순서를 정하고 정비 요령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말 이랜드 그룹에서 뽑는 '2003 지식경영대상'을 받았다. 호텔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다음달에는 중국으로 4박5일간 포상 여행을 떠난다. "예전에는 하루 평균 13개 정도의 객실을 정리했는데 새 업무 지침을 따르니 17개로 늘었습니다. 17개 객실을 정리하고도 시간이 남아 계단.복도 등 호텔 구석구석을 청소하죠."

지침에 따라 일하다 보니 객실 비품을 빠뜨려 손님의 불평을 사던 일도 없어졌다.

金씨가 객실 정비 지침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부터. 모회사인 이랜드 그룹에서 펼치고 있는 '지식 경영'이 호텔에 도입되면서 부터였다.

"사실 처음엔 관심이 없었어요. 지식 경영이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객실 청소는 지식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6년간 쌓은 저만의 노하우를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호텔에 입사하기 전 그는 10여년간 남편과 함께 공사장에서 벽돌 쌓는 일을 했다. 하지만 건축 공정이 기계화되면서 일거리가 끊겼다. 아이들 학비라도 벌 길을 찾던 중 생활정보지 구인란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 곳이 켄싱턴 호텔이었다. 중졸 학력에 직장 경험도 없는 그에게 이력서를 받아든 호텔 직원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그가 할 수 있었던 답변은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호텔 내 지식 경영을 확산시키는 중요 멤버가 됐다.

"모든 객실을 제 방처럼 정리했습니다. 남한테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제가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최선을 다했죠."

그는 최근 호텔 로비를 정리하는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두 자녀는 모두 장성해 큰딸은 학원 강사로, 아들은 대학을 휴학하고 군 복무 중이다. 남편은 택시기사로 일한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엄마가 회사에서 인정받는다고요. '능력있는 직장인'이라는 평을 듣는 것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박혜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