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한국신문은 지금 변화 준비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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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세계에서 신문판매전이 가장 치열한 런던의 아침. 더 타임스.가디언.데일리 메일.선지 등 10개의 신문이 배달.판매되고 있다.

고급지와 대중지, 대판과 타블로이드판, 좌파지와 우파지, 여성선호 신문과 남성선호 신문, 싼 신문과 비싼 신문, 유료신문과 무료신문 등 어디 하나 유사한 신문이 없을 정도다. 각 신문은 자기만의 개성과 차별화를 통해 타깃 독자들을 공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로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진 신문들의 차별화 전략은 이뿐 아니다.

국제 기사가 강점인 스위스 취리히의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은 고급 정보를 고가에 제공한다는 명품 전략으로 전 세계 오피니언 리더 18만명을 독자로 확보하고 있다. 독일어를 쓰는 인구 10만의 도시에서 전 세계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

반면 타임스는 10년 전 '고급지는 비싸다'는 통념을 깨고 45페니에서 20페니로 신문값을 대폭 내려 많은 독자에게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양질의 상품을 보다 싼값에 서비스한다는 전통적인 시장 원리를 감안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2004년 한국 신문 시장은 어떤가.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신문시장 진입이 쉬워지면서 많은 신문이 창간.복간되었다. 정권이 통제하던 신문 카르텔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문 내용도 보수 일색에서 우파.중도.좌파 등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민주주의 신문시장의 특색인 '사상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느냐는 문제에 대한 논조의 차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문제작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섹션 신문, 전문기자제, 가로쓰기, 새로운 지면배치 등 신문제작 시스템의 개혁이다. 일본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신문 지대와 마케팅 방식의 차별화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서울의 신문시장에는 런던에 비해 카르텔적인 요소가 남아있고 신문간 차별화도 뚜렷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전날 오후 7시에 판매되는 가판신문, 동일한 가격, 똑같은 판형…

시장경쟁 논리가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 신문산업의 활성화는 시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열쇠는 신문의 품질.가격.판촉.배달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차별화다.

민주사회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일이다. 상대방의 약점만 노리거나 상대의 패착으로 자신이 잘되길 바라는 시대는 지났다.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독자들에게 선택받아야만 신문에 미래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신문시장의 자유경쟁 원리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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