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독재자와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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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독재자는 그 평가를 항상 후세의 역사에 기댄다.설령 목적이 정당해도 그 수단을 용서받기란 특히 당대에서는 불가능에 가깝기때문이다.
유혈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고 17년간 장기집권한 독재자가 권좌에서 평화적으로 물러난 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일은 하나의 난센스다.
지난달 칠레의 산티아고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육군사관학교 앞에 모여 군사쿠데타 21주년을 경축했다고 한다.『피노체트,우리는 귀하를 원합니다.다시 한번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장군은 현재 79세다.90년 대통령에서 물러난후 육군사령관에 재임중이다.현역 세계 군사지도자중 최고령이다.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상징적인 역할로 후임 대통령들과 「공존」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73년 9월11일 육군참모총장으로 쿠데타를 주동,마르크스주의자 아옌데의 민선정부를 전복시켰다.남미 쿠데타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뿌렸다.
17년 통치중 보안부대에서 희생된 정치적 반대자는 수천명에 이른다.희생자 추모회는 매년 시위를 갖고 「살인마 피노체트」를규탄한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경제적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 준 국가적영웅」으로 그를 받든다.경제자유화의 성공으로 칠레는 성장률및 외국인 투자에서 남미 최고,인플레는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남미의 호랑이」다.
세계의 독재자와 쿠데타 주역들이「살아있는 모델」로 위안을 받고「내일의 독재」에 대한 유혹마저 충동질한다는 바깥의 우려도 고개를 든다.
「5.16」과「12.12」가 재조명되는 와중에 피노체트의 경우가 묘한 혼돈을 안긴다.한국경제의「기적」은 효율적인 정부,높은 교육열,근면하고 질좋은 노동력으로 설명돼왔다.
극동경제지의 한국통이었던 마크 클리퍼드가 최근『곤경에 빠진 호랑이:한국』이란 저서에서 경제 기적의 대부분의 공을 박정희장군에게 돌렸다.어느 서평자는『한국경제 기적의 설명에 빠져있던 장 하나가 채워졌다』고까지 평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을 부류들이 눈에 선하다.역사의 평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효율적인 정부가 있는 곳에 항상 독재가 있다」는 59년 트루먼의 경고는 씹을수록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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