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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박태환의 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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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박태환(18·경기고·사진)은 불안했다.

‘광주 전국체전을 치른 지 보름 남짓,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월드컵이라는 세계무대에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국민은 또다시 내 목에 금메달이 걸리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다. 주종목은 자유형 1500m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내 지구력의 한계는 여기까지가 아닐까’.

 지난달 말 경영월드컵 3차 시리즈가 열리는 호주 시드니로 출국하기 직전 박태환은 체육과학연구원 김용승 박사를 찾았다. 김 박사는 야구 박찬호, 김병현을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들의 심리상담을 책임진 스포츠심리학 권위자다.

 “박태환과 한 시간 정도 면담했다”는 김 박사는 “부담 없이 건전하게 승부를 바라보도록 도와줬다. 태환이는 또렷한 눈빛으로 내 말을 잘 흡수했다”고 말했다.

 2~3일 열린 시드니 대회에서 박태환은 출전한 세 종목(자유형 200m, 400m, 1500m)을 석권하며 팬들의 기대에 보답했다. 하지만 1500m 기록은 자신의 최고기록(14분33초28)에 16초 이상 처진 것이었다. 역시 바닥난 체력은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다음 대회인 스웨덴 스톡홀름 5차 시리즈까지는 열흘. 박석기 전담코치는 박태환에게 매일 1만3000m를 헤엄치게 했다. 평소의 1.5배 강훈련이었다. 한국에선 틈만 나면 새벽훈련을 빼먹으려 들었던 박태환이었지만 군말없이 지옥훈련을 완수했다.

 14일(한국시간)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박태환은 15일 자유형 1500m에 나섰다. 600m 지점부터 독주를 시작한 박태환은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역영, 2위(로버트 마갈리스·미국)에게 11.4초 앞선 14분36초42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12일 전 시드니 대회 기록을 13.52초나 앞당겼다. 불과 10분 만에 다시 나선 200m에서 박태환은 1분43초87로 우승하며 또다시 3관왕을 이뤘다. 육상으로 치면 마라톤 우승 직후 단거리 우승을 한 셈이다. 타고난 회복력에 더해 지구력이 매우 좋아졌음을 증명한 것이다.

 박태환은 “죽을 뻔했다. 1~2분 쉬다 바로 소집돼 뛰니까 너무 힘들었다”면서 “그래도 좋은 성적을 내 다행”이라며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평소 박태환의 훈련 모습을 지켜봤고, 이번에 MBC ESPN의 해설자로 나선 심민 감독(심팩트 스위밍 클럽)은 “태환이가 ‘내가 (1500m가 아니라) 400m 선수 아닌가’라고 고민했던 것을 말끔히 씻어내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기 코치는 “그동안의 지구력 보완은 만족스러웠지만 최종 목표는 내년 올림픽이다. 지구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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